노바 니발리스
제135화. 출발
밤이 깊어갈수록, 가게 안 곳곳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의 준비가 이어지고 있었다.
비아는 카운터 뒤편에 앉아, 낡은 앞치마 두 벌을 무릎에 올려두고 있었다. 하나는 형사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개어져 있던, 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앞치마였다. 그녀는 그 두 번째 앞치마의 매듭 부분을 손끝으로 오래도록 매만졌다. 실이 조금 풀려 있었다. 그녀는 반짇고리를 꺼내, 그 실을 다시 꼼꼼히 꿰매기 시작했다. 바늘이 천을 통과할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고, 그녀는 그 소리에 맞춰 낮게 중얼거렸다.
"…돌아오면, 이거 다시 입어야 한다……이다."
녹사가 그 모습을 지나치다 걸음을 멈췄다.
"뭘 그렇게 꿰매나."
"이거." 비아가 앞치마를 살짝 들어 보였다. "실이 풀려 있었다……이다. 누가 언제 다시 입을지 모르니까, 미리 꿰매둬야 한다……이다."
녹사는 잠시 그 앞치마를 바라보다, 비아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너는 늘 그런 식이다." 그녀가 말했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미리 준비해둔다."
"그게 문이 하던 일이었다……이다." 비아가 바늘을 다시 움직이며 답했다. "아직 아무도 안 왔는데도, 열릴 준비를 해두는 것.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이다."
녹사는 그 말에 옅게, 아주 옅게 웃었다.
"그 방식도 나쁘지 않다."
파빌라는 자기 방에서, 서랍 깊숙이 넣어뒀던 편지를 꺼냈다. 형사에게 보여준 적 없는, 자신이 직접 쓴 편지였다. 그녀는 그 편지를 조심스럽게 두 번 접어, 붉은 테두리 그릇 밑에 밀어 넣었다. 원본은 여기, 이 자리에 남겨두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내, 그 편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옮겨 적었다. 필체가 조금 떨렸지만, 그녀는 끝까지 다 옮겨 적었다.
그 사본을 작게 접어, 그녀는 살금살금 수연의 방으로 향했다. 수연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는 짐 꾸러미 안쪽 깊숙한 곳에 그 편지를 밀어 넣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용히.
'…이건, 걔한테 전해줄 거야. 원본은 나중에, 내가 직접 줄 거고.'
그녀는 짐을 원래대로 정리해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을 나섰다.
복도에서 그녀는 형사와 마주쳤다. 그는 자신의 짐 꾸러미를 점검하던 중이었다.
"안 주무세요?" 파빌라가 물었다.
"곧 자야죠." 형사가 짐을 매만지며 답했다. "파빌라 양은요?"
"저도 곧요." 그녀가 손을 등 뒤로 슬쩍 감추며 답했다. 형사는 그 손짓을 눈치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기다리는 거, 잘 부탁드립니다."
"네." 파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님도, 잘 지켜주세요. 다들."
형사는 그 말에 짧게 웃고는, 다시 짐을 향해 돌아섰다. 파빌라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때, 가게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군밤 할머니였다. 목도리를 아무렇게나 두른 채 김이 오르는 종이봉투를 품에 안은 그녀는,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목소리부터 들이밀었다.
"떠난다는 소문이 골목을 세 바퀴는 돌았는데, 나한테는 아무도 말을 안 해. 이 도시 인심이 이렇다니까."
봉투에서는 갓 구운 군밤 냄새가 훅 끼쳤다. 껍질 갈라진 틈으로 새어 나오는, 달큰하고 탄내 섞인 온기. 그 냄새 하나로 가게 안의 공기가 잠깐, 겨울 골목의 화로 앞으로 바뀌었다.
할머니는 형사의 짐 꾸러미를 허락도 없이 열어젖히더니, 봉투째 그 안에 쑤셔 넣었다. "먼 길엔 뜨끈한 게 하나는 있어야 하는 법이야. 식어도 먹을 만해. 내 밤은 식어도 맛있으니까." 형사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그녀는 이미 꾸러미 끈을 도로 여며주고 있었다. 수십 년 화로 앞에서 단련된 손은, 남의 짐 매듭 하나에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아껴 먹겠습니다." 형사가 봉투가 눌리지 않도록 짐 속 자리를 고쳐 잡으며 답했다.
"아껴 먹긴. 다 먹고 껍질을 세어 두게." 할머니가 그의 팔뚝을 툭 쳤다. 생각보다 묵직한 손이었다. "몇 톨이었는지, 돌아와서 나한테 말해줘야 해. 그게 외상값이야. 이 도시에서 외상 떼먹고 안 돌아온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어."
형사는 그 억지스러운 셈법에 잠시 말을 고르다, 결국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반드시 갚으러 오겠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간 뒤에도, 문가에는 그림자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볼도였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틀에 어깨만 기댄 채 한참을 서성이다, 수연과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여러 번 접었다 폈다 한 자국이 종이 가득 배어 있었다.
"…길에서요. 밤이 길게 느껴지는 날이 오면, 그때 펴 보세요. 그 전엔 말고요."
"시야?" 수연이 종이를 받아 들며 물었다.
"아직은요." 볼도가 시선을 종이에 둔 채 답했다. "마지막 줄을 못 썼어요. 그건— 돌아오신 다음에 쓸 거라서요. 그러니까 그건 미완성이에요. 완성본을 받으려면, 돌아오셔야 해요."
수연은 그 말의 속셈을 알아채고, 종이를 품 안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군밤 껍질의 셈법과 마지막 줄이 비어 있는 시. 이 도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돌아올 이유를 하나씩 떠나는 이들의 짐 속에 심어두고 있었다.
세레나는 자신의 방에서, 도시의 연대기 마지막 장을 펼쳐두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밤의 일을 기록하려 펜을 들었지만, 몇 줄을 쓰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결국 그녀는 짧게 한 줄만 남겼다.
"— 오늘 밤, 세 사람이 문을 나선다. 이 도시는 그들이 돌아올 자리를 지킨다."
그녀는 그 문장 위에 손을 얹고 오래도록 눈을 감았다. 붓끝에 남은 잉크가 마르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이 도시에 온 첫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없던 설원, 그리고 그 자리에 처음 피워 올린 작은 불씨. 그 불씨가 여기까지 자라났다는 사실이, 오늘 밤따라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이리스는 연습실에서 홀로 드론 아홉 대를 점검하고 있었다. 열 번째 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며, 그녀는 옅게 웃었다. 그 빈자리가 이제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어딘가로 떠난 여정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나머지 아홉 대의 날개를 하나씩 손끝으로 매만지며, 각각의 이름을 낮게 불렀다— 언젠가 그녀가 붙여준, 아무도 모르는 이름들이었다.
"…너희도 오늘 밤은 좀 쉬어. 내일부턴 계속 떠 있어야 하니까."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연습실 불을 하나만 남기고 껐다.
녹사는 증언대 앞에 홀로 서서, 팔짱을 낀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각오해온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팔뚝에 남은 흉터를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바스티타스의 흉터가 아니라, 훨씬 오래전, 자신이 아직 자유로웠던 시절에 얻은 흉터였다. 그 흉터를 매만지며, 그녀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번엔 내가 부르는 이름 차례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연은 그 밤, 검을 다 손질한 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가게 안을 돌아봤다.
카운터의 나뭇결, 낮은 의자들, 붉은 테두리의 그릇, 그리고 꺼지지 않고 밤새 타는 등불.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지금 이 순간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카운터 앞에 서서, 손끝으로 그 나뭇결을 가만히 쓸었다. 수많은 아침이 이 자리에서 시작됐었다. 물이 끓는 소리, 라면사장의 낮은 목소리, 손님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기억이 지금 이 조용한 새벽에 겹쳐 떠올랐다.
그녀는 카운터를 돌아 안쪽으로 들어가, 낡은 냄비 하나를 꺼내 봤다. 손잡이가 오래 써서 반들반들해진 그 냄비는, 그가 매일 아침 물을 올리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다시 제자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붉은 테두리의 그릇 앞에서,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 그릇에 처음 콜라비빔면을 만들어 먹었던 밤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음식을 먹으며 엉엉 울던 밤. 그날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계절이 지나갔는지 헤아려봤다.
낮은 의자들 사이를 지나며, 그녀는 이리스가 처음 이 가게에 발을 들이던 날을 떠올렸다. 파빌라가 처음 이 자리에 앉아 젓가락질을 배우던 모습도. 형사가 처음 국자를 쥐던 어색한 손짓도. 이 모든 장면이 이 좁은 공간 안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문 앞에 서서, 가게 전체를 눈에 담았다.
'…꼭 데려올게.'
그녀는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며, 마지막으로 붉은 그릇을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비아였다. 그녀는 말없이 다가와, 수연 옆에 나란히 섰다.
"…잠이 안 오나……이다?"
"응." 수연이 짧게 답했다. "너도?"
"나도……이다." 비아가 카운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문이라서, 원래 잠을 안 잔다……이다. 근데 요즘은— 가끔 눈을 감고 싶어진다……이다. 이것도 사람이 되어가는 건가."
수연은 그 말에 옅게 웃으며 비아의 어깨에 살짝 기댔다.
"…너, 진짜 사람 다 됐다."
"그런가……이다." 비아가 나직이 웃었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란히 서서 어두운 가게 안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밤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같은 시각, 레테는 지하 보관층에서 마지막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온 낡은 기록 도구— 지워진 것들을 받아 담던 얇은 유리병들을— 하나씩 천으로 감싸 작은 상자에 넣었다. 이번 원정에서는 받는 게 아니라 찾는 일을 해야 했으므로, 그 병들의 용도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비워둔 병 하나를 꺼내 품에 안았다. 언젠가 채워질, 아직은 이름 붙지 않은 병이었다.
'…이번엔 제가 먼저 나가서 찾아야죠.'
그녀는 그렇게 되뇌며, 상자를 닫고 계단을 올랐다.
새벽이 밝아오기 직전, 형사가 문 앞에 섰다. 레테와 수연이 그 뒤에 섰고, 남을 사람들이 조용히 배웅을 위해 모여들었다.
형사는 문고리에 손을 얹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똑, 똑.
문이 열리자, 낯선 세계의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차갑고 건조한, 이 도시의 겨울과는 또 다른 종류의 냉기였다. 그 바람에 실려, 아주 먼 곳의 흙냄새가 함께 밀려왔다.
수연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카운터, 낮은 의자, 붉은 그릇, 꺼지지 않는 등— 그 모든 것이 새벽빛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금방 갔다 올게."
그녀가 낮게 말했다. 누구에게라기보다, 이 가게 전체에게 하는 인사였다.
비아가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았다.
"조심해라……이다."
"응." 수연이 짧게 답하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나 비아는 손을 놓지 않았다. 형사가 이미 문고리에 손을 얹었고, 레테도 채비를 마친 뒤였지만, 비아는 여전히 수연의 손을 꼭 쥔 채 놓을 기미가 없었다.
"…비아?" 수연이 살짝 당황해 물었다.
비아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시선이 평소의 비아답지 않게, 아주 잠깐 낯설게 오래 머물렀다— 마치 지금 이 순간, 그녀 안의 아주 오래된 무언가가 이 이별을 대신 아파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 표정은 눈 깜빡할 사이에 다시 평소의 비아로 돌아왔고, 아무도 그 짧은 순간을 눈치채지 못했다.
"…빨리 와라……이다." 그녀가 그제야 손을 놓으며 말했다.
이리스가 그 옆에서 팔짱을 끼며 덧붙였다.
"드론 잘 챙겨요. 험하게 다루면 저한테 혼나요."
"알았어, 신입." 수연이 옅게 웃으며 답했다.
녹사가 마지막으로 형사에게 다가가, 짧게 말했다.
"결단은 못 해도, 걸음은 무겁게 걸어라. 그거면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형사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세레나는 세 사람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돌아올 자리는, 저희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문턱 앞에서, 수연은 마지막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밤새 우려낸 국물 냄새, 등불의 기름 내, 나무 카운터에 밴 세월의 냄새— 이 가게의 공기를 폐 깊숙한 곳까지 담아두려는 것처럼, 천천히.
수연이 먼저 문턱을 넘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익숙한 가게 바닥의 감촉이 사라지고 낯선 흙의 질감이 발바닥에 전해졌다. 공기의 온도도, 냄새도 완전히 달랐다— 이 도시의 겨울 공기보다 훨씬 건조하고, 어딘가 오래된 종이 냄새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그 낯섦에 잠시 숨을 참았다가, 이내 다시 내쉬었다.
레테가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문턱을 넘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등 뒤에 남는 등불의 온기가 목덜미에서 한 뼘씩 식어가는 것을, 그녀는 한 걸음마다 정확히 느끼고 있었다. 지하 보관층의 서늘하고 눅눅한 공기 속에서 살아온 그녀에게, 문 너머의 메마른 바람은 낯설다기보다 헐거웠다. 아무것도 배어 있지 않은 공기. 오랫동안 지하에서만 지내온 그녀에게, 이 발걸음 하나가 얼마나 큰 변화인지 되새기는 것 같았다.
형사가 마지막으로 들어서며, 문을 향해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문턱을 밟는 순간 그의 코끝에 마지막으로 걸린 것은 주방 쪽에서 흘러온 육수 냄새였고, 다음 순간 그것을 지워버린 것은 낯선 세계의 흙먼지가 혀끝에 남기는 텁텁한 맛이었다. 그는 그 맛을 오래 기억해두기로 했다. 수첩에 적을 수 없는 것들은, 몸에 적어두는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리고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크게 울렸다— 마치 이 도시 전체가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던 것처럼.
비아는 그 자리에 남아, 닫힌 문에 이마를 가만히 댔다. 나무의 서늘한 감촉이 이마에 닿았다.
"…다녀와라……이다."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문 너머에는 이제 그저 익숙한 가게 앞 골목만 보였지만, 그녀는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파빌라가 다가와 그녀의 옆에 조용히 섰다. 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란히 서서 문을 바라봤다.
세레나가 그 뒤에서 조용히 다가와,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도 이제, 우리 몫을 시작해야죠."
이리스가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나부터. 별부터 켤게요."
그녀는 곧장 연습실로 향했고, 잠시 후 도시의 하늘 위로 드론 아홉 대가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어두운 새벽하늘에, 그 아홉 개의 빛이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녹사는 증언대로 발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오늘부터, 또 하루를 버틴다."
파빌라가 가장 먼저 문 앞을 떠났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들어가, 가장 큰 솥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수도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텅 빈 가게를 채우자, 비아가 그 소리에 이끌리듯 뒤따라 들어와 그릇들을 꺼내 카운터 위에 줄 세웠다. 붉은 테두리 그릇만은— 맨 안쪽, 아무도 손대지 않는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둘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파빌라는 면 상자를 열어 남은 개수를 셌고, 비아는 어젯밤 실을 다시 꿰매둔 앞치마 두 벌 중 형사의 것을 반듯하게 개어 선반에 올렸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쪽은, 벽의 못에 걸어두었다. 언제든 팔만 꿰면 되도록.
물이 끓어오르자 파빌라가 첫 국자를 저었다. 김이 오르며 익숙한 국물 냄새가 가게 안에 퍼졌고, 그 냄새가 세 개의 빈자리를 잠시나마 덮었다. "…오늘 첫 손님은 누구려나." 파빌라가 국자를 쥔 채 혼잣말처럼 흘리자, 비아가 그릇 하나를 카운터 앞자리에 밀어놓았다.
"누가 와도, 자리는 있다……이다."
그것이 남은 사람들의 대답이었다. 떠난 이들의 몫까지, 이 가게는 오늘도 문을 연다는 것.
가게의 등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은 채, 새벽빛 속에서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도시의 하루가, 세 사람이 빠진 채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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