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33화. 묶이지 않는 것들

이튿날 아침, 가게 안에는 지도 대신 낡은 종이 한 장이 펼쳐져 있었다. 녹사가 밤새 그린 것이었다— 정교한 지형도가 아니라, 그녀의 기억 속에 남은 아홉 수호자의 대략적인 방향과 거리를 표시한 손그림이었다.

"세레스티아는 이미 만났다." 그녀가 종이 위 한 지점을 짚었다. "다음은 아마 이쪽이거나— 이쪽일 거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황룡. 순서는 정해진 게 아니다. 다만 가장 가까운 곳부터 부딪히게 될 거다."

수연이 그 종이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근데 아까 말한 노바일라랑 사일론은? 걔넨 안 나와?"

녹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 둘은 다르다."

"뭐가 달라?"

"묶이지 않는다."

그 말에 형사가 펜을 멈췄다.

"묶이지 않는다니— 조종당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그렇다." 녹사가 팔짱을 끼며 설명을 이었다. "노바일라는 가능성을 지킨다. 사일론은 기억을 지킨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뭐냐— 선택지를 지우는 일이다. 근데 가능성 그 자체를 지우려면, 가능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먼저 없애야 한다. 그건 모순이다. 그가 가능성을 지운다는 행위 자체가,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니까. 사일론도 마찬가지다. 기억을 붙잡으려면 기억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사일론은 그 개념 자체다. 실을 걸 자리가 없다."

"그래서 걔넨 자유롭다는 거네." 수연이 팔을 괴며 말했다. "그럼 우리 편이야?"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녹사가 답했다. "묶이지 않는다고 싸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노바일라는 강요하지 않는다— 그게 그의 본질이다. 사일론은 개입하지 않는다— 그것도 그의 본질이다. 둘 다 싸우지 못한다. 다만 나중에, 너희가 필요할 때 도움이 될 거다. 지금은 아니다."

레테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저도 비슷합니다. 저는 이야기가 끝난 것들을 다루는 존재라서요. 실이 저에게는 아예 걸리지 않아요. 다만 저도 싸우는 존재는 아닙니다."

형사는 그 말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그의 펜이 몇 줄을 그어 내려가다, 문득 멈췄다.

"그럼 묶이지 않는 존재가 셋이라는 겁니까? 노바일라, 사일론, 그리고 레테 씨."

"넷이다." 녹사가 낮게 말했다.

가게 안의 공기가 순간 무거워졌다. 그녀의 목소리에 실린 무게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바스티타스."


그 이름이 나오자, 파빌라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이름만으로도 이상한 한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건 뭐야?" 수연이 물었다.

녹사는 대답 대신, 자신의 왼쪽 팔뚝을 걷어 올렸다. 팔꿈치 아래로, 오래된 흉터 하나가 길게 나 있었다. 다른 상처들과 달리, 그 흉터는 이상하게 매끈했다— 마치 베인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그 자리를 그냥 통과하며 지워버린 것처럼.

"이걸 봐라." 그녀가 말했다. "이건 싸우다 생긴 상처가 아니다. 아주 오래전, 다른 세계에서— 나는 그 애 근처에 너무 가까이 있었다. 그 애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딱 반 걸음 늦게 피했다. 그 반 걸음 차이가, 이 흉터다."

"…뭘 만난 건데?"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녹사는 대답 대신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짧은 침묵 사이, 그녀의 기억이 오래전 그 세계로 돌아갔다.

그것은 지금과 비슷한, 그러나 훨씬 더 황량한 세계였다. 그녀는 그날 한 마을의 증언대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이 도시의 증언대와 비슷한 역할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통증을 대신 짊어지는 일이었다. 그날 오후, 하늘이 유난히 맑았던 것을 그녀는 기억한다. 구름 한 점 없이, 마을 광장의 우물물이 유난히 투명하게 반짝이던 오후였다.

그리고 그 맑은 하늘 아래로,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형체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머리칼이 위로 뻗친,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 소녀. 그 걸음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땅이 아주 미세하게— 마치 종이를 살짝 접었다 펴는 것처럼— 뒤틀렸다.

녹사는 그 순간 직감했다. 저것은 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즉시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가 채 터지기도 전에, 그 소녀의 걸음이 그녀 자신의 옆을 스쳤다.

바람 한 점 없었는데, 그녀의 팔뚝을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프지도 않았다. 그저 서늘한 감각이 한순간 스쳤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지나간 자리에, 지금 이 흉터가 남았다.

그 뒤로 돌아보니, 마을의 절반이 사라져 있었다. 우물도, 광장도, 그녀가 지키려던 사람들의 절반도. 소녀는 이미 저 멀리, 여전히 같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지나쳤는지, 그 소녀는 끝까지 알지 못했다.

녹사는 그 뒤로 오랫동안, 그 콧노래의 가락을 잊지 못했다. 가사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그 가락이, 그녀의 귀에 남아 어떤 비명보다도 오래 울렸다.

그녀는 눈을 떴다. 다시 이 가게의 카운터, 이 사람들의 얼굴로 돌아왔다.

"무의미한 재해의 신." 그녀가 팔을 다시 내리며 말했다. "바스티타스. 벌하지 않는다. 노리지 않는다. 실패하지도 않는다. 그냥— 지나간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다." 녹사가 말했다. "그 애는 재해 그 자체다. 근데 이유가 없는 재해다. 벌을 주려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노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걸어갈 뿐인데, 그 걸음마다 지형이 갈라지고 강이 방향을 바꾸고 마을 하나가 사라진다. 그 애한테는 그게 그냥— 산책이다."

레테가 그 말에 조용히 보충했다.

"제가 아는 한, 바스티타스에게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목적도, 서사도, 대상도 없어요. 그래서 저 같은 존재도 그 애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없는 걸 기록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럼 Writer도 걔는 못 부린다는 거네." 수연이 말했다.

"그래." 녹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없어서, 묶을 실 자체가 없다. 그리고— 그게 제일 무서운 거다."

"왜 무서워? 우리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닌 거잖아."

"편이 없다는 게 무서운 거다." 녹사가 낮게 말했다. "그 애는 지금 이 마취된 세계도, 예전의 세계도— 구분 안 한다. 우리가 이기든 지든, 그 애는 신경 안 쓴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이 자리를 지나가면서도, 우리를 인식조차 못 할 거다. 그게, 어느 편에 서서 우리를 죽이려는 신보다 훨씬 무섭다."

파빌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만나면 어떻게 해요?"

"운이 나쁘면, 원정길에 그 애를 만난다." 녹사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만나면— 싸우지 마라. 이야기도 하지 마라. 그냥 피해라."

"싸워도 안 돼?" 수연이 물었다.

"싸울 대상이 없다." 녹사가 답했다. "그 애한텐 너희가 안 보인다. 칼을 휘둘러도, 그 애는 자기가 베였다는 것도 모를 거다. 그리고 그 애의 걸음은— 너희가 아무리 강해져도, 멈출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냥 지나가는 재해를 상대로 이기고 지는 건 없다. 그저 그 길목에서 벗어나는 것만 있을 뿐이다."

수연은 그 말을 들으며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신살의 힘— 원인과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를 강제하는 힘. 만약 그 힘으로 바스티타스와 부딪히면 어떻게 될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 질문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Writer도 못 부리는 신이 있다는 거네." 그녀가 대신 그렇게 말했다.

"그래." 녹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뜻하는 게 하나 있다. 그 사람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자기 손안에 쥐려 한다— 근데 이야기가 없는 것 하나가, 처음부터 그 손 바깥에 있었다. 그 사람의 계획이 완성된 세계에도, 바스티타스는 여전히 지나갈 거다. 그러니 그 완벽한 계획이라는 건, 시작부터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던 거다."

그 말이 방 안에 조용히 가라앉았다. 형사가 수첩에 마지막 줄을 적어 넣었다.

- 바스티타스(무의미의 신): 조종 불가, 대화 불가, 전투 불가. 대응 수칙: 회피, 오직 회피.

그는 그 줄에 밑줄을 두 번 그었다. 지금까지 적어온 그 어떤 항목보다도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세레나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저희가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

"낮다." 녹사가 답했다. "세계는 넓다. 근데 낮다고 없는 건 아니다."

"만약 만나면, 알아챌 수는 있어요?" 파빌라가 물었다.

녹사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지형이 이유 없이 갈라져 있는 곳. 강이 갑자기 방향을 튼 자리. 마을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 그런 걸 보면— 그 애가 지나간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이다. 그럼 그 방향은 피해라."

"이유 없이." 형사가 그 말을 되뇌며 적었다. "그게 제일 확실한 표식이라는 거군요. 이유가 있는 재해는 저희가 아는 재해고, 이유가 없는 재해는— 그 애 것이다."

"맞다." 녹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연이 종이 지도를 다시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럼 정리하면— 신들 중에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애들이 있고, 싸우면 안 되는 애들이 있고, 아예 싸울 상대가 안 되는 애가 하나 있다는 거네."

"그렇다." 녹사가 답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황룡은 붙잡혀서 강요당하는 자들이다. 그들과는 싸우게 될 거다— 그러나 그건 그들을 해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그들을 풀어주기 위한 싸움이어야 한다. 노바일라와 사일론은 자유롭지만 싸우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바스티타스는—"

"자유롭지도, 우리 편도, 적도 아닌… 그냥 지나가는 거." 수연이 말을 맺었다.

녹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이해했군."

가게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카운터 구석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비아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나도 옛날에 그 애를 본 적 있다……이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언제?" 수연이 물었다.

"기억은 흐릿하다……이다." 비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문이니까, 늘 여러 곳을 오갔다……이다. 그러다 한 번, 문을 열었는데— 그 문 너머에 아무것도 없었다……이다. 마을도, 사람도, 소리도. 그냥 텅 빈 땅이었다……이다. 나는 그때 뭔가 잘못 열었다고 생각했다. 근데 나중에 알았다……이다. 그 자리는, 그 애가 이미 지나간 자리였다……이다."

"…그럼 너도 위험했던 거야?" 파빌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니……이다." 비아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문이라서,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이다. 그냥 열었다가 닫았다……이다. 근데 그 텅 빈 느낌은, 아직도 기억한다……이다. 문을 여는 게 무서웠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이다."

녹사가 그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정상이다. 그 텅 빈 느낌이 그 애의 진짜 얼굴이다. 파괴가 아니라— 비어 있음."

수연은 종이 지도 위, 아직 이름도 없는 어느 지점을 손끝으로 짚었다. 그 손끝이 향하는 곳에, 언젠가 마주칠 얼굴들이— 어떤 것은 싸워야 할 얼굴로, 어떤 것은 그저 피해야 할 실루엣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종이에서 손을 떼며 낮게 중얼거렸다.

"…빨리 가자. 걔들 데리러."

아무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날 밤, 다들 잠든 뒤에도 수연은 카운터에 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자기 손바닥을 오래도록 내려다봤다.

낮에 들은 이야기가, 마음 한구석에 계속 걸려 있었다. 신살의 힘— 원인과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를 강제하는 그 힘이라면, 청룡도 백호도 언젠가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바스티타스는 달랐다. 이야기가 없는 존재에게, 결과를 강제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실이 없는 존재에게, 끊을 실이 어디 있을까.

'…내 힘도 안 통하는 게 있구나.'

그 생각이 그녀를 이상하게 안심시키는 동시에, 이상하게 두렵게 만들었다. 안심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이 위험한 힘도 결국 만능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이 힘을 쓰는 자신도, 여전히 세계의 법칙 안에 있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두려운 이유는—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주쳤을 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피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늘, 어떻게든 맞서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기 손끝에 얼음 결정을 살짝 맺혀 봤다. 작은 얼음 조각이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회전했다. 그 조각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그녀는 문득 지금 자신이 두 가지 힘을 손에 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하나는 이 도시에서 익힌, 사람을 지키기 위한 얼음의 힘. 다른 하나는— 아직 완전히 마주하지 못한, 그녀 자신조차 무서워하는 원래의 힘.

'…그 나쁜 새끼를 데려오려면, 결국 그 힘도 다 써야 할 거야.'

그녀는 얼음 조각을 손안에서 완전히 녹여버렸다. 차가운 물방울이 손바닥을 타고 흘렀다.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형사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 옆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려놓았다.

"…아직 안 주무십니까."

"그냥, 좀." 그녀가 손바닥의 물기를 소매로 닦으며 답했다. "생각할 게 많아서."

"바스티타스 때문입니까?"

"그것도 있고." 그녀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나, 나중에 진짜 그 힘 다 쓰게 될까 봐."

형사는 그 말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힘을 쓰게 되더라도, 그게 당신을 바꾸는 건 아닙니다. 힘은 증거와 비슷합니다. 증거 자체에는 죄가 없죠— 어느 쪽 서류철에 철해지느냐가 문제일 뿐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그 힘을, 사람을 지키는 쪽 서류철에만 철해 오셨습니다."

수연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찻잔을 감싼 손끝에서, 아주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내일이면 떠나야 할 길 위에 가늘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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