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28화. 레테의 폭주
노바 니발리스 심층부, 폐기된 기록보관층에서는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잊힌 것들이 조용히 쌓이는 곳이었다. 누군가 잊고 싶어 했던 기억, 끝내 잊히지 못한 채 남은 상처, 아무도 다시 찾지 않는 이야기들. 레테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정리하며, 이 깊은 곳에서 홀로 세월을 보내왔다.
그런데 최근 며칠 사이, 그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
기록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의 몇 배, 몇십 배에 달하는 양이었다. 레테는 그 기록들을 하나씩 열어보며, 곧 심상치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들은 잊힌 것이 아니었다.
빼앗긴 것이었다.
잊힌 기억에는 특유의 결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옅어진 흔적, 주인이 스스로 놓아버린 무게. 그러나 지금 쏟아져 들어오는 기록들은 그 결이 완전히 달랐다 — 마치 억지로 뜯겨나간 것처럼, 절단면이 날카로웠다.
레테는 그 기록들을 분류하려 애썼다. 그러나 양이 너무 많았다. 그녀의 보관소, 수천 년간 정교하게 정리되어온 그 체계가, 처음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넘치기 시작했다.
"…분류가 안 됩니다."
그녀가 부서진 몸으로 중얼거렸다.
"저는 잊힌 것의 보관자입니다. 그런데 지금 오는 것들은 잊힌 게 아니라 — 빼앗긴 겁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기록들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담을 그릇이 부족했다. 그녀 자신이 넘치기 직전이었다.
레테가 지상으로 올라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그녀가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개는 누군가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조용히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 그녀는 도시의 큰길을 따라, 부서진 몸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그 모습을 처음 목격한 건, 이른 아침 골목을 청소하던 주민 몇 명이었다.
"…저게 뭐지?"
한 사람이 놀라 걸음을 멈췄다.
레테의 형상은 처참했다. 한쪽 어깨가 비정상적으로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손목은 살아 있는 사람의 각도라고 하기 어려웠다. 백금빛 머리카락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걸음마다 몸 전체가 삐걱이듯 움직였다.
그러나 그 처참한 모습으로도, 그녀는 똑바로 서서 걸었다. 넘어지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도시 사람들은 저마다의 창문 너머로, 혹은 골목 어귀에서 그 낯설고 처연한 존재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무도 말을 걸지 못했다. 그저 침묵 속에서, 그녀가 지나가는 길에 자리를 비켜줄 뿐이었다.
그녀가 향한 곳은, 라면가게였다.
레테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형사와 비아, 수연이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형사가 가장 먼저 그녀를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레테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말은, 그녀가 이 도시에 처음 나타난 이래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언제나 그녀는 증언하고, 관찰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존재였다. 도움을 청하는 쪽이 된 적은 없었다.
형사가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레테는 조심스레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제 보관소가 넘치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지금까지는 잊힌 것들만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오는 것들은 성질이 다릅니다. 빼앗긴 선택들이에요. 그리고 그 양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녀는 품속에서 작은 조각 하나를 꺼냈다. 빛나는 실 같기도, 접힌 종이 같기도 한 형태였다.
"이것 좀 봐주시겠어요."
수연이 그 조각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갔다. 손끝이 닿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짧은 장면이 스쳤다.
어느 세계, 바닷가 마을. 한 소녀가 폭풍이 몰아치는 밤바다를 향해 걸어 나가려 하고 있었다. 뒤에서 어머니가 소녀를 말렸지만, 소녀는 고집스레 걸음을 옮겼다.
그 선택 안에는 많은 것들이 얽혀 있었다. 폭풍 속에서 배가 뒤집힐 위험. 표류하다 조난될 가능성. 그리고 — 그 조난 끝에서 만나게 될, 평생의 친구가 될 뻔한 어느 낯선 구조자와의 조우.
소녀는 그 밤, 정말로 배를 몰고 나갔다. 폭풍에 휩쓸려 표류했고, 사흘 밤낮을 헤맨 끝에 이웃 마을의 한 어부에게 구조됐다. 그 어부는 소녀와 나이가 비슷한 청년이었고, 두 사람은 그날의 인연으로 평생을 함께할 친구가 되었다.
장면이 끝났다.
수연은 눈앞이 흐려지는 걸 느끼며 손을 뗐다.
"…근데 이게 왜 여기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레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선택은 지워졌습니다. 지금의 그 세계에서, 소녀는 그날 밤바다에 나가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얌전히 따르고, 방에서 잠들죠. 폭풍도, 조난도, 그 어부와의 만남도 — 전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 지금 그 소녀는 어떻게 됐는데요?"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안전하게. 그리고 평생, 그 어부를 만나지 못한 채로요."
가게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삭제된 것은 위험이 아닙니다."
레테가 낮게 말했다.
"위험과 한 몸이던 만남입니다."
형사가 그 말을 받아 적으며 물었다.
"…이런 사례가, 얼마나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까."
"셀 수 없습니다."
레테가 답했다.
"매 순간, 세계 곳곳에서 이런 선택들이 지워지고 있어요. 위험한 도전 안에 숨어 있던 성장. 실패할 뻔한 사랑 안에 숨어 있던 화해. 무모한 여행 안에 숨어 있던 발견. 그 모든 것들이, 위험이라는 이유만으로 통째로 삭제되고 있습니다."
비아가 카운터 위에서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듣다가, 낮게 말했다.
"그 사람은 위험만 지운다고 생각한다……이다. 근데 위험 안에는, 위험만 있는 게 아니다……이다."
"맞습니다."
레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은 언제나 다른 무언가와 한 몸으로 존재합니다. 성장과, 만남과, 발견과. 그 사람은 위험이라는 겉껍질만 보고,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안 봅니다."
수연은 그 말을 들으며, 자기 손끝에 아직 남아 있는 그 소녀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소녀요."
그녀가 물었다.
"지금이라도 되돌릴 방법 없어요?"
레테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기억을 보관하는 것뿐입니다. 되돌리는 건 제 능력 밖의 일이에요."
"그럼 왜 도움을 청하러 온 거예요?"
레테는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제 보관소가 넘치면, 저는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그리고 제가 무너지면, 이 모든 빼앗긴 선택들의 기록도 함께 사라집니다. 저는 — 이것들이 사라지지 않길 바랍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이 기록들을 필요로 할 거라고 믿으니까요."
형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수첩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했다.
- 레테의 보관소 과부하 — 빼앗긴 선택의 기록이 통제 불능 수준으로 유입
- 대응 필요: 레테를 도와 기록을 분산하거나, 대중에게 공개할 방법 모색
그는 문득,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혹시, 이 기록들을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면 어떻습니까."
레테가 그를 봤다.
"무슨 뜻입니까."
"당신 혼자 감당하는 대신, 도시 사람들이 함께 짊어지면요. 증언대를 만드는 겁니다. 당신이 가진 기록들을, 사람들 앞에서 하나씩 공개하는 거죠."
레테는 그 제안을 오래 고민했다.
"…그건 제 방식이 아닙니다. 저는 보관하는 존재이지,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방식으로는 넘칩니다."
형사가 담담히 말했다.
"때로는 혼자 짊어지던 걸 나눠 지는 게, 감당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레테는 그 말에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제 방식이 아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으니까요."
수연이 그 결정을 듣고 낮게 중얼거렸다.
"…망각의 존재가, 기억을 드러내는 사도가 되네."
그 말에는 옅은 아이러니와, 그보다 짙은 기대가 함께 담겨 있었다.
가게의 등불 아래, 네 존재는 그날 늦게까지 광장에 세울 증언대의 형태를 함께 구상했다. 그것이, 이 도시가 마취에 맞서 세울 첫 번째 방벽이 될 것이었다.
논의가 끝나갈 무렵, 수연이 문득 물었다.
"레테 씨."
"네."
"그 소녀 기억 말고, 혹시 — 제 것도 있어요?"
레테가 그녀를 오래 바라봤다.
"당신의 기억은, 아직 삭제된 적 없습니다. 당신이 세계를 부순 그 선택은, 여전히 온전히 당신 것입니다."
수연은 그 대답에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그럼 왜 안심이 안 되지."
그녀가 중얼거렸다.
레테가 조용히 답했다.
"안심이라는 건,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만 오는 감정입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건 안심이 아니라 — 경계입니다. 그리고 경계는, 아직 당신이 지켜야 할 것이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수연은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경계. 그래, 그거였다. 그녀는 아직 완전히 잃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 잃을지 모른다는 그 불확실함이, 그녀를 밤새 뒤척이게 만드는 진짜 이유였다.
그녀는 자기 손목의 매듭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채, 단단히 묶여 있었다.
"…안 뺏길 거야."
그녀가 낮게 다짐했다.
"내 것도, 다른 사람들 것도."
레테는 그 다짐을 듣고, 아주 오랜만에 — 정확히는 처음으로 —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다짐이, 제 보관소가 넘치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어떻게요?"
"당신처럼 다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새로 빼앗기는 선택의 숫자가 줄어들 테니까요."
그 말은 위로이자, 동시에 이 싸움이 그들 모두의 몫이라는 조용한 확인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수연은 매일 밤 울었다.
낮 동안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후드를 손질하고, 검을 벼리고, 형사와 함께 목록을 정리하고, 비아 옆에서 담담하게 국물을 마셨다. 그 어떤 순간에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밤이 되어 방문을 닫으면, 그녀는 이불 속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매일 밤 정확히 같은 순간에 — 후드의 온도를 확인하고, 그것이 오늘도 그가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는 뜻임을 재확인한 직후에. 그녀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낮의 수연과 밤의 수연은, 서로 다른 사람처럼 철저히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눈물은 평소와 달랐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후드도 걸치지 않은 채 방을 나섰다. 목적지는 도시 외곽, 얼어붙은 호수였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그녀가 종종 홀로 검을 시험하러 가던 자리였다.
호수에 도착한 그녀는, 한동안 그 얼어붙은 수면을 오래도록 노려봤다.
그리고 갑자기, 손끝에 얼음의 마력을 응축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정교한 검술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마력을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 무작정 호수를 향해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쾅.
얼음 덩어리가 수면을 뚫고 터지며, 얼어붙은 호수 전체가 뒤흔들렸다.
"우리 사장님 내놔!!"
그녀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쾅. 또 하나의 마력 폭탄이 날아가 터졌다.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내놔! 내놓으라고!!"
그녀는 계속해서 마력을 뭉쳐 던졌다. 정교함도, 조준도 없었다.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만들어, 눈앞의 호수를 향해 마구잡이로 내던졌다. 쾅, 쾅, 연이어 터지는 소리가 고요한 밤공기를 찢었다.
"…씨발, 왜 안 와."
그녀가 흐느끼며 중얼거렸다.
"왜 안 오냐고, 이 나쁜 새끼야."
그녀는 검을 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나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그녀는 다시 마력을 뭉쳤다. 이번엔 더 크게, 더 거칠게.
쾅!
가장 큰 폭발이 호수 한가운데서 터졌다. 얼음 수면에 거대한 균열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갔다.
수연은 그 균열을 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완전히 무너져,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보고 싶단 말이야…"
그녀가 흐느꼈다.
"매일매일 보고 싶은데, 그 나쁜 새끼는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겠고… 나 진짜, 이렇게 사는 거 지겨워 죽겠어…"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낮의 그 냉정하고 침착한 수연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저 그리움과 분노와 외로움에 완전히 잠식된, 스물 몇 살의 한 여자아이만 있었다.
형사는 그 광경을, 멀리 언덕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수연이 방을 나서는 소리를 듣고, 걱정되어 몰래 뒤를 따랐었다. 그러나 호수에 도착해 그녀가 무너지는 모습을 본 순간, 그는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어떤 눈물은, 목격되지 않아야 온전히 눈물일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발길을 돌려 가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이후로도, 그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날 아침, 유난히 다정하게 그녀의 몫 국물에 계란을 하나 더 넣어줬을 뿐이었다.
수연은 그 계란을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그 국물을 마저 먹었다.
낮의 수연과 밤의 수연은, 그렇게 오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하나로 포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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