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67화. 시장, 방, 부탁

매달 한 번씩, 도시 광장에는 야시장이 열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문턱시장이라 불렀다.

그날 저녁, 수연은 오랜만에 일을 마치고 그 야시장을 구경하러 나섰다.

"우와, 오늘따라 사람이 많네요."

그녀가 감탄하며 좌판들을 둘러보았다.

골동품, 옷가지, 소소한 먹거리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각자의 좌판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중에서도 유독 골동품을 파는 좌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좌판의 주인은 베짐 놀이라는 상인이었다.

"구경하고 가세요! 다 사연 있는 물건들입니다."

베짐이 호객하며 말했다.

수연은 그 좌판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낡은 시계, 빛바랜 액자, 녹슨 열쇠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채 놓여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물건 하나에 멈췄다.

그것은 낡고 작은 물건이었다. 그녀는 그 물건을 보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거.'

그녀는 그 물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보았던 어떤 물건과 닮아 있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그녀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


"이거, 얼마예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거요? 헐값에 드릴게요."

베짐이 답했다.

수연은 그 물건을 손에 들어보려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

그녀는 오랫동안 그 물건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이, 어렴풋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기억을 다시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안 살래요."

그녀가 결국 그렇게 말하며 손을 거뒀다.

"어, 마음에 안 드세요?"

베짐이 의아하게 물었다.

"아니요, 그냥……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요."

수연은 그렇게 답하며, 그 물건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야시장을 계속 둘러보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 물건의 잔상이 계속 남아 있었다.

'……저게 뭐였을까.'

그녀는 그 물건의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과거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결국 그 좌판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야시장을 떠나 가게로 돌아왔다.

"수연 씨, 뭐 좋은 거 있었어요?"

소예가 물었다.

"음…… 그냥 구경만 했어."

수연이 얼버무리며 답했다.


라면사장은 그녀의 표정에서 뭔가 미묘한 그늘을 눈치챘다.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었나."

"……좀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말하고 싶으면 해라. 안 해도 되고."

라면사장의 그 말에, 수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골동품 좌판에서, 낯익은 물건을 봤어요."

"낯익은 물건?"

"네. 제 원래 세계에서 봤던 것 같은 물건이요. 근데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안 샀어요. 아직은…… 마주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


"잘한 선택이다."

라면사장이 답했다.

"그런가요?"

"준비 안 된 걸 억지로 마주하는 건, 오히려 더 아픈 법이다. 때가 되면, 다시 그 물건을 만날 기회가 올 거다."

수연은 그 말에 조금 위안을 얻었다.


"근데 그 물건, 다시 사고 싶어지면 어떡하죠? 이미 팔렸을 수도 있잖아요."

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럼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있는 거다. 네가 그때는 준비가 안 됐었다는 뜻이니까."

라면사장의 그 담담한 대답에, 수연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밤, 베짐 놀은 좌판을 정리하며 그 낡은 물건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 손님, 이 물건 보고 되게 이상한 표정을 지었었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물건을 조심스럽게 상자에 담았다. 다음 시장이 열릴 때까지, 그 물건은 그의 보관함에서 조용히 기다릴 것이었다.


며칠 뒤, 수연이 다시 문득 그 좌판을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그 물건은 이미 좌판 위에서 사라져 있었다.

"어, 그때 그 물건은요?"

그녀가 물었다.

"아, 그거요? 다른 분이 사가셨어요."

베짐이 답했다.

수연은 그 소식에 잠시 아쉬움을 느꼈지만, 동시에 이상한 안도감도 함께 밀려왔다.


'……그게 맞는 건지도 몰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 물건이 자신의 손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녀가 아직 완전히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은 과거를 억지로 붙들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가게로 돌아온 그녀는, 라면사장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그 물건, 다른 사람이 사갔대요."

"그렇군."

"근데 이상하게, 아쉬우면서도 편안해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그게 맞는 거다. 붙잡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 있다."

"사장님은 그런 거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오래 살다 보면, 그런 것도 알게 된다."

수연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과거의 잔상을 조용히 흘려보냈다.

그날 밤, 그녀는 잠들기 전 오늘의 일을 되짚었다.

그 낯익은 물건을 마주했던 순간의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놓아준 뒤의 편안함. 그녀는 자신이 조금씩, 자신의 과거를 자신만의 속도로 소화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가게 밖으로는 오늘 밤도 변함없이 별빛이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그 별빛 아래에서, 그녀의 마음도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며칠 뒤, 수연은 이리스에게 볼일이 있어 그녀의 숙소를 처음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신입, 나 잠깐 들어가도 돼?"

"네, 들어오세요!"

이리스가 흔쾌히 문을 열어주었다.

수연은 그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은 완벽하게 꾸며져 있었다. 화려한 조명 장식들, 정갈하게 정리된 드론 보관함, 그리고 벽 한쪽을 가득 채운 무대 스케치들.

"우와, 방 진짜 예쁘다."

수연이 감탄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제가 이런 건 좀 신경 쓰는 편이라서요."

이리스가 웃으며 답했다.


수연은 그 벽에 붙은 스케치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무대 위의 조명 배치, 관객석의 각도, 커튼의 색감까지,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들이었다.

"이거 다 신입이 그린 거야?"

"네, 심심할 때마다 그려요."

"진짜 대단하다. 완전 전문가급인데?"


수연은 그 그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모든 그림이, 관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었다. 무대 위에서 관객석을 내려다보는 그림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근데 신입, 이거 다 관객석 시점이네?"

수연이 물었다.


이리스는 그 지적에 순간 멈칫했다.

"어, 그런가요?"

"응. 무대 위에서 본 그림은 하나도 없어."

이리스는 그 말에 자신의 그림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정말이었다. 그녀는 늘 무대 뒤, 혹은 관객석의 시점으로만 무대를 상상해왔다.


"신기하네요. 저도 몰랐는데."

이리스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무의식적으로 그런 거 아닐까?"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이리스가 인정했다.


"신입은, 자기가 무대 위에 선 모습은 아예 상상을 안 해본 거야?"

수연이 물었다.

이리스는 그 질문에 한참을 고민했다.

"……해본 적 있긴 한데, 매번 그리다가 지웠어요."

"왜?"

"어색해서요.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게, 상상만 해도 어색하더라고요."


수연은 그 대답에 마음이 아팠다.

"신입, 저번 합동 무대 때도 그렇고, 왜 그렇게 자기 자신을 뒤로 미루는 거야?"

이리스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오래된 습관 같아요."


"습관이라니?"

"예전에는요, 제가 만든 걸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게 전부였어요. 저 자신이 주목받는 것보다, 제가 만든 결과물이 빛나는 게 더 중요했거든요."

이리스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근데 그러다 보니까, 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수연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신입, 너도 충분히 빛날 자격 있어."

"고마워요, 선배."

이리스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여전히 완전히 풀리지 않은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근데 이 방, 진짜 예쁘긴 한데 뭔가 좀 쓸쓸한 느낌도 들어."

수연이 문득 말했다.

"쓸쓸해요?"

"응. 다 남을 위한 그림들뿐이잖아. 신입 자신을 위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이리스는 그 지적에 순간 말을 잃었다.


"저도, 제 자신을 위한 그림 한 장 정도는 그려도 될까요?"

이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하지! 그게 뭐가 문제야."

수연이 힘주어 답했다.

"그럼…… 다음에, 한번 그려볼게요."

이리스가 그렇게 말하며, 벽에 걸린 그림들을 새삼 다시 바라보았다.


그날 저녁, 수연은 가게로 돌아와 라면사장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신입 방에 가봤는데, 무대 스케치가 다 관객석 시점이더라고요."

"그런가."

"본인도 몰랐던 것 같아요, 그게. 근데 제가 지적하니까 스스로도 놀라더라고요."

라면사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 아이는, 자기 자신을 그림 속에 넣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거군."

"네, 그런 것 같아요."

"천천히 하겠지. 억지로 밀지 말고."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옆에서 조금은 응원해주고 싶어요."


"그거면 충분하다."

라면사장이 답했다.

"응원해주는 거랑, 억지로 밀어붙이는 건 다르니까."

수연은 그 구분에 깊이 공감했다.

"맞아요. 저도 그 선을 잘 지키고 싶어요."


그날 밤, 이리스는 자신의 방에서 새로운 스케치북 한 장을 펼쳤다.

그녀는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바라본 관객석을 그려보려 시도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붓을 들었다가, 결국 그리지 못하고 내려놓았다.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가 봐.'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빈 종이를 조심스럽게 서랍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이 종이 위에 무대 위에서 본 시점을 그릴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그녀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창밖으로는 극장 거리의 불빛이 여전히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한편, 노크사는 그날 이후로 조금씩 이 가게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달에 한 번 정도였던 방문이, 어느새 매주 한 번씩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늘 같은 구석 자리에 앉아, 늘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오늘도 오셨네요."

수연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

노크사가 짧게 답했다.


처음에는 그의 방문에 아이들이 잔뜩 겁을 먹곤 했다. 그의 존재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위압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도 조금씩 그에게 익숙해져 갔다.

"저 아저씨, 매주 오는 사람이네."

한 아이가 친구에게 속삭였다.

"응, 근데 뭔가 무섭게 안 생겼어? 나 처음엔 무서웠는데."

"나도. 근데 이제 그냥 익숙해."


그날, 탄지 로가 마침 가게에 있었다. 그는 늘 화로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는 걸 선호했다.

그러나 그날은 우연히, 노크사의 옆자리가 유일하게 비어 있었다.

"저, 여기 앉아도 될까요?"

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크사는 그 질문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라."


탄지는 조심스럽게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편안해졌다.

"저기…… 아저씨는 뭐가 무섭지 않으세요?"

탄지가 문득 물었다.

노크사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나도, 무서운 게 있다."


"진짜요? 뭐가 무서우신데요?"

탄지가 놀라서 물었다.

노크사는 그 질문에 답 대신, 나직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너는, 불이 무섭지."

"……네."

"나는, 침묵이 무섭다."


탄지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침묵이 왜 무서워요?"

"침묵 속에서는, 비명을 대신 지를 수 없으니까."

노크사의 그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거웠다. 탄지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뭔가 중요한 이야기라는 걸 직감했다.


"그럼 아저씨는, 항상 비명을 지르고 다니시는 거예요?"

"아니. 필요할 때만."

"언제가 필요할 때인데요?"

노크사는 그 질문에 옅게, 아주 옅게 웃었다.

"누군가 아파도 소리 내지 못할 때."


탄지는 그 대답에 뭔가 뭉클함을 느꼈다.

"그럼…… 저도 언젠가 아저씨가 대신 비명 질러줄 수 있어요?"

"필요하다면."

그 짧은 대답에, 탄지는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그 대화를 곁에서 지켜보던 수연이, 마음이 뭉클해져 다가왔다.

"두 분 대화, 되게 좋아 보이네요."

"……그냥, 이런저런 얘기 했다."

노크사가 답했다.

"탄지야, 이제 노크사 아저씨 옆에 앉는 것도 괜찮아?"

수연이 물었다.

"응! 이제 안 무서워."

탄지가 씩씩하게 답했다.


그날 이후, 탄지는 노크사가 가게에 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옆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신뢰가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저 두 사람, 은근 잘 어울리네요."

소예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노크사 씨도 이제 완전 단골이 됐네요."

수연이 라면사장에게 말했다.

"그런 것 같군."

"처음엔 되게 신비롭고 무서운 존재였는데, 이제 그냥 익숙한 손님 같아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그게 이 가게의 방식이다."

그가 말했다.

"어떤 방식이요?"

"아무리 특별한 존재라도, 여기 오래 있으면 결국 평범한 일상의 일부가 되지."

수연은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맞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너도, 처음엔 낯설었지."

라면사장이 문득 그렇게 말했다.

"저요?"

"그래. 근데 지금은, 이 가게에 완전히 녹아든 것 같다."

수연은 그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런가요."

"그래. 이제 네가 없으면, 이 가게가 허전할 것 같다."


그 진솔한 고백에, 수연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사, 사장님이 그런 말씀 하시니까 이상해요."

"……왜."

"평소에 그런 말씀 잘 안 하시잖아요."

라면사장은 그 지적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그냥 사실을 말한 거다."


두 사람 사이에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이 조금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노크사는 여느 때처럼 조용히 가게를 나서며,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오늘도, 고맙다."

그가 나직이 말했다.

"또 오세요."

수연이 웃으며 답했다.


노크사가 떠난 뒤, 라면사장은 그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저 존재도, 이제 이 가게에서 조금씩 평범한 시간을 누리고 있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옅게 웃었다. 이 가게는, 신적인 존재든 평범한 인간이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는 곳이었다. 그 사실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큰 자부심이었다.

가게 밖으로는 밤바람이 조용히 불어오고 있었다.


며칠 뒤, 세레나가 가게에 들러 조심스럽게 수연에게 말을 건넸다.

"수연 씨, 부탁이 하나 있어요."

"부탁이요? 뭔데요?"

"오늘 순찰, 저랑 같이 가주실 수 있어요?"

수연은 그 요청에 고개를 갸웃했다.

"저야 좋은데, 왜 갑자기요?"


"그냥…… 오늘은 혼자 가고 싶지 않아서요."

세레나가 솔직하게 답했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덧붙였다.

수연은 그 말에서 세레나의 오랜 원칙 — 명령이 아니라 동의로만 관계를 맺는다는 것 — 을 다시금 느꼈다.

"당연히 같이 가드릴게요."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도시 순찰을 나섰다.

세레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도시 곳곳을 살피며 걸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발걸음이 유독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수연이 물었다.

"조금만 더 가면 보여드릴게요."


그들은 도시 외곽의 한적한 구역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아직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은 빈터들이 여러 개 있었다. 텅 빈 채로, 그저 눈만 소복이 쌓여 있는 자리들.

"여기가 뭔데요?"

수연이 물었다.

"비어 있는 자리들이에요."

세레나가 답했다.


"왜 비워두신 거예요?"

"언젠가 올 사람들 자리예요."

세레나의 그 말에, 수연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미리 자리를 만들어두신 거예요?"

"네. 이 도시는 계속 성장할 거예요. 그리고 그 성장을 위한 자리는, 미리 마련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수연은 그 빈터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자리들, 각각 어떤 사람들을 위한 건지 정해져 있어요?"

"아니요. 그냥 비어 있어요. 누가 올지는, 저도 몰라요."

세레나의 그 대답에는, 미래를 통제하려 하지 않는 그녀만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근데 왜 오늘, 저한테 이걸 보여주고 싶으셨어요?"

수연이 물었다.

세레나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수연 씨도, 한때는 이런 빈자리 중 하나였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그 자리를 완전히 채우고 있죠."


"그 사실이, 저한테 큰 위안이 돼요."

세레나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빈터들도 언젠가, 수연 씨처럼 그 자리를 온전히 채워줄 사람들로 가득 찰 거라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수연은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저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두 사람은 그 빈터에 나란히 서서, 한동안 말없이 그 텅 빈 눈밭을 바라보았다.

"세레나 씨, 이 도시를 만드신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수연이 문득 말했다.

"저 혼자 만든 게 아니에요. 이 도시에 온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그래도, 이런 미래를 위한 자리까지 미리 준비하시는 거 보면, 세레나 씨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알 것 같아요."

수연의 그 말에, 세레나는 옅게 웃었다.

"고마워요, 수연 씨."

"근데 오늘, 왜 혼자 오고 싶지 않으셨어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레나는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가끔은, 이 빈터들을 보면 좀 외로워져요. 아직 아무도 없는 자리들이니까요."

"그럼 오늘, 제가 옆에 있어서 좀 나으셨어요?"

"네, 훨씬요."

세레나가 진심으로 답했다.


수연은 그 대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앞으로도 종종 같이 와요. 혼자 오시지 말고."

"부담 안 되시겠어요?"

"전혀요. 오히려 좋아요."

세레나는 그 말에 안도하며 옅게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순찰을 마치고 함께 가게로 돌아왔다.

"오늘 어땠어요?"

라면사장이 물었다.

"세레나 씨가 도시 빈터들 보여주셨어요. 미래를 위해 비워둔 자리들이요."

수연이 답했다.

라면사장은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들, 저도 알고 있다."

"사장님도요?"

"그래. 저 아이는, 늘 그렇게 미래를 준비하는 편이지."

라면사장이 세레나를 향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세레나도 그 시선에 화답하듯 웃었다.


"근데 사장님, 저희 가게도 그런 빈자리가 있나요?"

수연이 문득 물었다.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순간 선반 위의 붉은 테두리 그릇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있지."

"그 그릇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그 사람도, 언젠가 이 문을 열고 들어오겠죠?"

수연이 물었다.

"그럴 거다."

라면사장의 그 확신에 찬 대답에, 수연은 옅게 웃었다.

"그럼 저도 그날을 기다릴게요."


그날 밤, 세레나는 가게를 나서며 문득 수연을 돌아보았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저야말로, 좋은 곳 보여주셔서 고마워요."

세레나는 그 인사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며, 오늘 함께 나눈 그 시간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새삼 느꼈다.

이 도시의 빈자리들처럼, 그녀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누군가와 그 여백을 나눌 수 있다면, 그 기다림도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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