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50화. 전원 집합

그날 오후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늘 그렇듯 가늘게 흩날리던 눈이 아니었다. 굵은 눈송이가 순식간에 쌓이기 시작하더니, 저녁이 되자 온 도시가 순백으로 뒤덮였다. 골목마다 무릎까지 눈이 쌓였고, 바람은 매섭게 몰아쳤다.

"이거 진짜 폭설인데."

수연이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도시에서 이런 눈은 처음 봐요."

소예도 놀란 얼굴로 창에 바짝 붙었다.

라면사장은 그 광경을 보며 손을 멈추고 밖을 응시했다.

"큰일이군."


곧이어 가게 문이 벌컥 열렸다.

"저기, 실례 좀 할게요!"

포목점 주인이 온몸에 눈을 뒤집어쓴 채 뛰어들어왔다. 그 뒤로 몇몇 주민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왔다.

"길이 완전히 막혔어요. 집에 못 갈 것 같은데……"

"들어와라. 여긴 늘 열려 있다."

라면사장이 그렇게 답하며 자리를 내주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눈보라를 피해 갈 곳을 찾던 사람들이 하나둘 라면가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거 사람이 너무 많아지는데."

수연이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이미 가게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장 상인들, 목욕탕 사람들, 두반 카로, 헤라 몬츠, 얀 스노브까지. 이 도시의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눈을 피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괜찮다. 자리는 만들면 된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의자들을 재배치했다. 좁아진 공간만큼, 사람들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볼도도 순찰을 돌다 눈보라에 발이 묶여 가게로 피신했다.

"이 눈, 언제까지 이럴까요?"

그가 눈을 털어내며 물었다.

"모르겠다. 근데 오늘 밤은 다들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다."

라면사장이 답했다.

세레나도 순찰을 포기하고 가게로 들어섰다. 평소라면 끝까지 도시를 지켰을 그녀였지만, 오늘의 눈보라는 그마저도 물러서게 만들었다.

"이 정도 눈이면, 밖에 있는 게 더 위험해요."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리스도 드론들을 안전하게 챙겨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드론들이 눈 맞으면 고장 나서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소중한 상자들을 조심스럽게 구석에 놓았다.

마왕도 어느새 가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런 폭설은 오랜만이군."

"왕국 시절에도 이런 눈 있었어요?"

수연이 물었다.

"있었지. 그때도 백성들이 성으로 몰려들었다. 그 시절엔 성문을 닫아걸었지만, 오늘은……." 그는 가게 안을 둘러보며 옅게 웃었다. "여긴 문을 닫지 않는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홍 망토가 문가에 나타났다.

녹사였다.

가게 안 사람들 몇몇이 순간 움찔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그 반응은 아주 짧고 가벼웠다. 이제 이 도시 사람들 대부분은 그녀를 알고,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들어오세요."

수연이 먼저 손을 흔들며 맞았다.

녹사는 그 환대에 옅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은 이제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찼다. 이 도시의 거의 모든 존재들이, 오늘 하룻밤 이 작은 라면가게 안에 모여 있었다.

"이거 진짜 장관인데."

수연이 그 광경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라면사장은 그 인파를 바라보며 조용히 냄비 세 개를 동시에 불 위에 올렸다.

"오늘은 다 같이 먹는다."

그가 낮게 선언했다.


세 개의 냄비에서 동시에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라면사장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세 냄비를 번갈아 저으며, 한 그릇씩 정성껏 담아냈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소예가 앞치마를 두르며 나섰다.

"저도요!"

이리스와 수연도 함께 손을 보탰다. 볼도는 그릇을 나르고, 세레나는 자리를 정돈하며 사람들을 안내했다.

가게 안은 그렇게 하나의 커다란 부엌이자 식당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다 같이 모인 거, 처음이지 않아?"

수연이 그릇을 나르며 소예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이 도시 사람들 거의 다 모인 것 같아요."

"근데 이상하게 안 좁게 느껴져."

"저도요. 오히려 더 따뜻한 것 같아요."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비아는 그 소란 속에서 신이 나서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다들 왔다……이다! 진짜 다 왔다……이다!"

"비아야, 오늘 특별한 밤이지?"

한 아이가 물었다.

"응……이다! 이렇게 다 같이 모인 거 처음이다……이다!"

아이들은 그런 비아를 따라 가게 안을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다. 어른들도 오랜만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돈키호테도 그 인파 사이에서 진지한 얼굴로 창문을 살피고 있었다.

"이 폭설, 뭔가 결함이 있는 게 아닐까요?"

"오늘은 그냥 눈이다."

라면사장이 짧게 답했다.

"확실합니까?"

"확실하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아가 그 옆에서 웃으며 덧붙였다.

"오늘은 조사 쉬는 날이다……이다!"

돈키호테는 그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고 센느도 소식을 듣고 부두에서 어묵탕 재료를 챙겨 뛰어왔다.

"이런 날엔 국물 하나로는 부족하지!"

그녀는 그렇게 외치며 가게 한쪽에 자신의 냄비를 놓았다. 라면사장은 그 모습에 옅게 웃으며 자리를 내주었다.

"오늘만 특별히 봐준다."

"오늘만이 아니라 계속 이럴 거야!"

두 사람은 그렇게 투닥거리면서도, 나란히 각자의 국물을 끓이며 사람들을 먹였다.


탄지 로도 아버지와 함께 가게에 도착해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불 피우는 게 진짜 중요하겠어요."

그가 라면사장 옆에서 조심스럽게 화로를 살폈다.

"그래, 잘 부탁한다."

"무서운 채로, 잘 다뤄볼게요."

탄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예전의 떨리던 손 대신, 이제는 제법 침착한 손길로 불을 지켰다.


재하도 그 인파 속에서 조용히 구석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전히 말은 적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가 완전히 그의 것이 되어 있었다.

"재하 씨, 국물 더 드릴까요?"

소예가 다가가 물었다.

재하는 그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유디 칸도 지팡이를 짚고 눈보라를 헤치며 도착했다.

"오늘 같은 날은 듣기만 하는 것도 힘들겠구먼."

그녀가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그냥 드시기만 하세요."

수연이 웃으며 그릇을 내밀었다.

"고맙다."

유디 칸은 그 그릇을 받아 들며 옅게 웃었다.


녹사도 그 노랫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 옆에 앉은 한 젊은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예전에 제가 소금 뿌렸던 거……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포목점 주인이었다. 녹사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이미 지난 일이에요."

"근데 오늘 이렇게 다 같이 있으니까, 다시 한번 말하고 싶었어요. 그때 제가 너무 무서워서 함부로 대했던 거요."

"괜찮아요. 그 덕분에 저도 이 도시에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어요."

포목점 주인은 그 대답에 마음이 놓인 듯 옅게 웃었다. 그의 딸도 옆에서 졸린 눈으로 녹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녹사는 그 작은 인사에 손을 마주 흔들어주며, 오랜만에 편안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가게 안은 그렇게, 이 도시의 모든 이야기들이 한데 모인 하나의 커다란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라면사장은 세 개의 냄비를 계속 저으며, 한 그릇 한 그릇을 정성껏 담아냈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지만, 표정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사장님, 힘들지 않으세요?"

수연이 물었다.

"힘들지 않다. 오히려……." 그는 가게 안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런 밤을 기다려왔다."


세레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히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오늘, 좀 특별한 밤이네요."

"그렇다."

"어제 저희가 나눴던 얘기, 아직 답은 없지만…… 오늘 이 광경을 보니까, 조금은 위안이 되네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원칙은 없어도, 이런 밤은 만들 수 있다."

세레나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어제의 무거운 질문은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었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눈보라는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가게 안의 온기와 함께 나눈 국물, 그리고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군밤 할머니가 먼저 낮은 목소리로 옛 노래 한 소절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몇몇 노인들이 화답하듯 따라 불렀고, 곧 시장 상인들도 하나둘 합류했다.

"이 노래, 처음 듣는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수연이 그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저도 그래요. 근데 좋네요."

소예도 그 옆에서 옅게 웃으며 답했다.

누군가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곧 여기저기서 화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해진 곡도, 정해진 순서도 없었지만, 그 어수선한 화음이 오히려 따뜻하게 가게 안을 채웠다.

이리스도 그 노래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몇 소절을 따라 흥얼거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그녀 자신은 그 순간 뭔가 벅찬 감정을 느꼈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사람들은 하나둘 가게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고 잠들기 시작했다. 의자에 기댄 채,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저마다 편한 자세로 오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수연도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문득 눈을 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이 도시의 거의 모든 존재들이, 오늘 하룻밤 이 작은 공간 안에 함께 있었다. 그 광경이 그녀에게는 이 도시 전체를 압축해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라면사장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며, 잠든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오가고 있었다. 담요를 덮어주고, 꺼져가는 화로를 살피고, 혹시 깨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비아도 그 곁을 졸린 눈으로 따라다니며,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작은 인사를 건넸다.

"오늘 다들 와줘서 고맙다……이다."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가게 안은 완전히 고요해졌다. 눈보라도 완전히 그쳤고, 창밖으로 희미하게 별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라면사장은 그 고요함 속에서, 가게 안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둘러보았다. 잠든 얼굴들 하나하나가, 이 도시의 살아있는 증거들이었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가 닿은 곳은, 가게 한쪽 구석이었다.


그곳에는 낮은 의자와 붉은 테두리 그릇이, 오늘 밤에도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밤에도, 그 자리만큼은 누구도 앉지 않았다. 마치 모두가 무의식중에, 그 자리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라면사장은 그 빈자리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가가 그릇을 한 번 더 닦았다. 이 폭설의 밤에도, 그의 손길은 변함없었다.

"……언젠가는."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지만, 이 도시 전체를 향한 오래된 약속이기도 했다.

비아가 그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그의 곁에 섰다.

"오늘 다 왔는데도, 저 자리는 여전히 비었다……이다."

"그렇구나."

"근데 괜찮다……이다. 언젠가 온다……이다."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그래, 언젠가 온다."

"오늘처럼 이렇게 다 같이 있는 밤에, 그 사람도 올 수 있으면 좋겠다……이다."

라면사장은 그 바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그 빈 그릇을 바라보았다.

수연도 어느새 그 옆으로 다가와 함께 그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장님, 저 자리 주인, 언젠가 저희가 만나게 될까요?"

"그럴 거다."

"어떤 사람일까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오래도록 침묵하다가, 낮게 답했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손님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수연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얼굴들처럼, 언젠가 저 빈자리에도 낯익은 누군가가 앉게 될 날이 올 것이었다.

창밖의 별빛이 그 빈 그릇 위로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노바 니발리스의 첫 번째 챕터가, 그렇게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자리 하나를 남긴 채 조용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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