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56화. 녹사가 사라진 밤

새벽 다섯 시, 마르코 에실은 여느 때처럼 증언대를 돌아보러 광장으로 나섰다.

그는 요 며칠 사이 이 일에 유난히 진심이 되어 있었다. 삭제의 파도가 밀려왔던 그 밤, 자신이 두 손으로 붙잡았던 팻말이 끝내 지워지지 않고 버텨낸 뒤로— 그는 이 나무판이 단순한 표지가 아니라, 자신이 지켜야 할 무언가라고 여기게 됐다. 편지를 나르며 평생 남의 소식을 전해온 그에게, 이 팻말을 지키는 일은 처음으로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 곁에 서 있다는 감각을 줬다. 그는 오늘도 팻말의 서리 무늬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지 확인하려, 평소보다 조금 이른 걸음으로 광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광장 저편,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붉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녹사님?"

그는 광장을 가로질러 증언대 앞까지 다가갔다. 단상은 그대로였다. 팻말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늘 그 옆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그녀의 모습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르코는 처음엔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웠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본 뒤에도 그 어디에서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곧장 가게로 달려갔다.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가장 먼저 나온 건 파빌라였다. 그녀는 마르코의 다급한 얼굴을 보고 곧바로 심상치 않은 일임을 직감했다.

"녹사님이— 증언대에 안 계세요." 그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 말에 세레나가 겉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뛰어나왔다. 비아와 이리스가 뒤따랐고, 소식을 들은 증언대의 자원봉사자 몇도 광장 쪽에서 합류했다. 다들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광장에 도착했을 때, 새벽빛이 막 밝아오고 있었다. 밤새 내린 눈이 광장 전체를 얇게 덮고 있었고, 그 위로 아무 흔적도 없이— 아니, 정확히는 흔적이 있었다. 다만 그것이 다들 예상했던 종류의 흔적이 아니었다.

"…이거 봐요." 세레나가 먼저 몸을 낮춰 눈밭을 살폈다.

증언대 앞에서 시작된 발자국이, 광장 가장자리를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세레나는 손끝으로 그 발자국의 간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확인했다.

"…끌려간 흔적이 아니에요." 그녀가 신중하게 말했다. "봐요. 보폭이 일정해요. 발을 질질 끌거나, 몸부림친 흔적도 없어요. 이건—"

그녀는 그 발자국 하나에 자신의 손바닥을 대보며, 그 깊이와 간격을 다시 확인했다.

"걸어간 거예요. 자기 발로."


그 말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로 조용히 퍼져나갔다. 파빌라는 그 발자국을 따라 몇 걸음 걸어가며, 눈밭에 남은 그 규칙적인 리듬을 눈으로 좇았다. 발자국은 어느 한 곳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넘어질 뻔한 흔적도, 멈칫거린 흔적도 없었다. 마치 그녀가 이 길을 오래전부터 이미 정확히 계산해뒀던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이 완벽하게 균일했다.

"…이게 왜 더 무서운 거죠." 파빌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끌려간 흔적이면— 그건 억지로 당한 거잖아요. 근데 이건—"

"이건 그녀가 선택한 거예요." 세레나가 발자국이 끝나는 방향, 광장 너머 도시 경계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게, 훨씬 무거운 겁니다."

이리스가 그 발자국 옆에 쭈그려 앉아, 눈밭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발자국이 광장 끝에서 뚝 끊겨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이 뒤로는— 아무것도 없네요. 마치 여기서부터, 다른 어딘가로 넘어간 것처럼."

세레나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마지막 발자국을 오래도록 내려다봤다. 그 발자국 하나에도, 조금의 망설임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증언대 위, 팻말과 나란히 못으로 고정된 낡은 종이 한 장이 발견됐다.

세레나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떼어냈다. 종이 위의 글씨는 녹사 특유의, 군더더기 없이 직선으로 눌러쓴 필체였다.

"그 사람이 나를 부른다."

그녀는 그렇게 첫 줄을 소리 내어 읽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숨죽여 다음 줄을 기다렸다.

"안 가면 이 도시를 잡아끌 거다."

"내 발로 간다— 붙잡히는 것과 걸어가는 것은 다르니까."

세레나의 목소리가 그 대목에서 잠시 흔들렸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다음 줄을 이었다.

"원정대에게 전해라. 나를 막으러 오지 말고, 나를 이기러 와라."

그 마지막 문장이 끝나자, 광장은 완전한 침묵에 잠겼다.


비아는 그 마지막 문장을 듣는 순간, 숨을 삼켰다.

"…이거였다……이다."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뭐가요?" 파빌라가 물었다.

비아는 대답 대신, 며칠 전 원정대를 배웅하던 그 새벽을 떠올렸다. 다들 각자의 짐을 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을 준비하던 그 밤— 증언대 앞에 홀로 서 있던 녹사가, 팔뚝의 오래된 흉터를 매만지며 나직이 중얼거렸던 말이 있었다. "이번엔 내가 부르는 이름 차례다." 그때는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무슨 뜻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비아조차 그저 흘려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말의 뜻이 뒤늦게 제자리를 찾아 들어맞았다. 세레스티아를 되돌린 건 비아가 외친 옛 이름, "루체모라"였다. 그렇다면 녹사가 붙잡혔을 때— 그녀를 되돌릴 그 옛 이름을, 누군가 불러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녹사는 이미 그날 밤부터, 자신이 붙잡히리라는 걸, 그리고 자신을 부를 차례가 곧 온다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이다." 비아가 그 사실을 되짚으며 나직이 말했다. "우리한테 미리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근데 그 말은, 자기 혼자 삼켰다……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세레나는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이 가진 종이를 다시 내려다봤다. 그녀의 눈빛에 새로운 종류의 슬픔이 스쳤다— 녹사가 이 순간을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 준비의 과정에서조차 자신의 두려움을 아무에게도 나누지 않았다는 것.


정오가 되기 전, 증언대를 지키던 자원봉사자들과 세레나, 비아는 증언대 주변을 다시 살폈다. 녹사가 늘 머물던 자리 — 단상 뒤편,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나무판을 덧대둔 좁은 그늘 — 에는 그녀의 것이라 할 만한 물건이 거의 없었다. 낡은 담요 한 장, 물을 마시던 나무 잔 하나, 그리고 그 담요 밑에 접혀 있던 천 조각 하나가 전부였다.

세레나가 그 천 조각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오래되어 색이 바랜 붉은 천이었다— 지금 그녀가 두르고 다니는 망토와 같은 재질이었지만, 크기가 훨씬 작았다. 마치 아이 옷처럼 작은 조각이었다.

"…이게 뭘까요." 파빌라가 다가와 함께 들여다봤다.

"모르겠어요." 세레나가 답했다. "그런데— 그녀가 처음 이 도시에 자리 잡았을 때부터 갖고 있었을 거예요. 이렇게 오래 간직해온 걸 보면."

비아가 그 천 조각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이거, 본 적 있다……이다." 그녀가 천 조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아주 오래전에. 녹사가 아직 하늘 전체였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처럼 이렇게 사람 크기로 걸어 다니기 전에, 딱 한 번 이 크기의 몸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다……이다. 아마 그때 입었던 옷 조각일 거다. 처음으로 이 정도 크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확인해본 순간이었을 거다……이다."

아무도 그 이상은 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작은 천 조각 하나가, 녹사에게도 한때는 지금의 몸을 얻는 것 자체가 낯설고 조심스러운 일이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세레나는 그 천을 다시 정성스레 접어, 자신의 품속에 넣었다.

"돌아오면," 그녀가 말했다. "다시 여기 갖다 둘게요."

그 말에는 "돌아온다면"이 아니라 "돌아오면"이라는, 의식적인 확신이 담겨 있었다.


광장에 모여 있던 시민들 사이에서도, 그날 하루 종일 조용한 동요가 이어졌다. 마르코는 증언대 팻말 옆에 앉아,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지난밤 자신이 붙들었던 그 팻말이, 사실은 녹사가 평생 지켜온 것과 같은 종류의 일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사라지려는 것을 붙잡는 일. 다만 그녀는 그 일을 훨씬 더 오래, 훨씬 더 무거운 몫으로 해왔을 뿐이었다.

"…그 목소리 덕분에 살아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그가 팻말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정작 자기 갈 길은, 아무한테도 안 알리고 갔구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이 그 곁에 조용히 다가와 함께 앉았다. 누군가는 화로를 가져왔고, 누군가는 그저 말없이 곁을 지켰다. 그것은 며칠 전 밤, 삭제의 파도 앞에서 사람들이 저마다의 불빛을 밝히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다만 이번엔 맞서 싸울 대상이 없었다. 그저 빈자리를 함께 지키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세레나는 그 종이를 두 손으로 쥔 채,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다. 이 도시가 생기기도 전, 아무것도 없던 설원에서 처음 들었던 그 억눌린 흐느낌. 그 흐느낌을 향해 걸어갔던 자신의 작은 불씨. 그날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함께 버텨온 시간들. 세레스티아가 침공했던 밤, 자신을 대신해 비명을 질러주던 그 목소리. 자신의 손끝이 흐려져갈 때, 강제로 앉혀주며 "네가 무너지는 걸 참는 건 방관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던 그 단호함.

그리고 지금, 그 모든 시간을 함께한 존재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결정을 내린 뒤, 자신의 두 발로 이 도시를 떠났다.

세레나는 그 종이를 다시 한번 내려다봤다. 붙잡히는 것과 걸어가는 것은 다르다— 그 한 문장이, 세레나의 가슴 한복판을 정확히 관통했다. 녹사는 이 실이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가게 두지 않았다. 그것이 이 도시 전체를 위협하게 두지 않기 위해, 그녀는 자기 발로 먼저 걸어 나갔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이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방식이었다— 끌려가느니, 걸어간다. 붙잡히느니, 스스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 저항의 방식이 아무리 존엄하다 해도, 세레나에게 남는 감정은 자랑스러움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이 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했던 그 밤, 녹사의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무도 그 울음을 혼자 듣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자신이, 지금 이 순간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뒷모습이 남긴 발자국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견딜 수 없이 무겁게 만들었다.

세레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도, 그녀가 먼저 움직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침묵을 깨지 않았다. 파빌라가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 다시 손을 거뒀다— 이 순간만큼은, 세레나 혼자 그 무게를 온전히 느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뒤, 세레나는 그 종이를 품에 조심스럽게 안았다.

"…이 도시는," 그녀가 낮게 말했다. "이 쪽지를, 반드시 원정대에게 전할 겁니다."


그날 오후, 낯선 세계의 낮은 산등성이를 걷고 있던 수연과 형사, 레테에게 익숙한 통신이 도착했다. 이리스가 도시에서 관리하는 드론 중 하나가, 오랜 시간과 거리를 넘어 짧은 메시지를 실어 보낸 것이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세레나의 목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졌다— 발자국의 간격, 붙잡히는 것과 걸어가는 것이 다르다는 문장, 그리고 마지막 한 줄, "나를 이기러 와라."

수연은 그 메시지를 끝까지 들은 뒤에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손이 저도 모르게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그 손끝에 서서히 얼음 결정이 맺혔다가, 다시 녹아내렸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녹사와 나눴던 짧은 말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처음 도시에서 마주쳤을 때의 그 서늘한 경계심. 세레스티아의 텅 빈 눈을 마주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던 그날, 뒤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던 그 존재감. 그리고 떠나던 새벽, 형사에게 건넸던 그 말— "결단은 못 해도 걸음은 무겁게 걸어라." 수연은 그 말이 형사에게만 한 말이 아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 것 같았다. 그건 녹사 자신에게도 매번 되뇌던 다짐이었을 것이다.

이번엔 그 무거운 걸음을, 녹사 스스로 걸어야 했다. 수연은 그 사실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그녀다워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을까. 왜 늘 이런 식으로, 짐을 나누는 대신 혼자 짊어지고 걸어 나가 버리는 걸까— 그러나 그 물음 끝에서, 수연은 문득 자신이 세레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들었던 걸 떠올렸다.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우기까지, 세레나에게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녹사에게도, 그 배움은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서, 수연은 이 싸움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직감했다. 지금까지 마주쳐온 세레스티아도, 청룡도— 모두 붙잡힌 채 강요당하는 존재였고, 그들을 구하는 일은 명확했다. 그러나 녹사는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자기 발로, 자기 의지로. 그렇다면 이번엔 단순히 실을 끊어내는 구출이 아니라— 그녀가 각오하고 걸어 들어간 그 각오 자체와 마주해야 하는 싸움이 될 것이었다. 이기지 않으면, 그녀를 다시 데려올 수 없다. 그 말의 무게가 수연의 가슴을 서늘하게 눌렀다.

"…녹사가," 그녀가 마침내 낮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다음 상대야."

형사와 레테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그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저물어가는 낯선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들을 막으러 오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이 반드시 다시 마주해야 할 존재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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