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3화. 헤라 몬츠의 마지막 산
헤라 몬츠는 매일 같은 시간에 왔다.
정확히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시각. 이 도시에 아직 정확한 시계가 없던 시절부터 그녀는 그 시간을 정확히 맞춰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몸에 밴 습관이라기보다, 산을 오르내리며 평생 해와 그림자로 시간을 재던 감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었다.
"오늘도 오셨네요."
수연이 국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매일 오지."
헤라는 짧게 답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육십대로 보이는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세월이 아니라 바람과 햇빛이 새긴 것처럼 보였다. 손등의 굳은살도, 걸음걸이의 안정감도, 오랫동안 발밑을 믿어온 사람의 것이었다.
수연은 그녀의 맞은편 자리를 정리하며 슬쩍 물었다.
"헤라 님은 원래 뭐 하시던 분이에요?"
"등반가."
"산 타는 사람이요?"
"그래."
헤라는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에 세 번 올랐어. 마지막 한 번은, 정상 백 미터 앞에서 돌아섰지."
"왜요?"
"날씨가 안 좋았어. 더 가면 못 내려올 것 같았거든."
수연은 그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 자리에 앉았다. 청소는 나중에 해도 됐다.
"그럼 정상은 못 밟은 거예요?"
"못 밟았지."
"아쉽지 않으세요?"
헤라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국물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쉬워. 지금도."
"그럼 다시 도전하지 그러셨어요?"
"기회가 없었어. 그날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가게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수연은 그 침묵의 무게를 어렴풋이 느꼈다.
"어떻게 마지막인지 아셨어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헤라는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내려오는 길에, 알았어. 다리에 힘이 없더라고. 예전 같지 않았어."
"그게 다예요?"
"그거면 충분했어. 산은 정직하거든. 몸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래도 포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쉽지 않았지."
헤라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근데 산에서 배운 게 하나 있어. 정상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거."
"뭔데요?"
"돌아오는 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옅게 웃었다.
"올라가는 사람은 많아. 근데 다 돌아오는 건 아니야. 나는 세 번 다 돌아왔어. 그게 내가 제일 자랑스러운 거야. 정상을 못 밟은 것보다."
며칠 뒤, 헤라가 꿈 이야기를 했다.
"어젯밤 꿈에서 정상에 섰어."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진짜 정상. 백 미터 남았던 그 지점을 넘어서."
"좋은 꿈이네요."
수연이 말했다.
"좋았지."
헤라는 잠깐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어딘가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깨고 나니까 더 허전하더라."
"왜요?"
"진짜가 아니니까."
라면사장이 냄비를 저으며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는 별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지만, 손의 움직임이 아주 조금 느려져 있었다.
"헤라 님."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상에 못 간 거, 아직도 후회하세요?"
헤라는 그 질문에 오래 생각했다.
"후회는 아니야."
그녀가 마침내 대답했다.
"내려온 건 옳은 선택이었어. 그때 계속 갔으면, 나는 지금 여기 없었겠지."
"근데 아쉬워하신다면서요."
"아쉬운 거랑 후회하는 건 달라."
헤라가 국물을 마저 마셨다.
"후회는 다시 하면 다르게 했을 거란 뜻이야. 나는 다시 해도 똑같이 내려왔을 거야. 그런데도 아쉬운 건, 그냥 아쉬운 거지. 정상을 못 밟은 게 아쉬운 거지, 내려온 게 아쉬운 게 아니야."
수연은 그 구분을 곱씹었다. 아쉬움과 후회는 다르다는 것. 그녀에게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산은 내려와서 완성된다는 말, 아세요?"
수연이 문득 물었다.
"내가 한 말이야."
헤라가 대답했다.
"어? 진짜요?"
"등반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말이지. 올라가는 건 반쪽이야. 내려와야 완성이야."
"근데 정작 본인은 정상을 못 밟으셨잖아요."
"그러니까 더 잘 아는 거지."
헤라가 씩 웃었다.
"완성 못 한 사람이 완성의 의미를 더 오래 생각하거든."
수연은 그 말에 뭔가 뜨끔했다. 그녀 자신도, 완성되지 못한 채 남은 것들이 많았다.
"헤라 님은 그 말, 누구한테 처음 했어요?"
"제자한테."
"제자가 있었어요?"
"있었지. 나보다 더 재능 있는 아이였어."
헤라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 아이는 그 산의 정상을 밟았어. 내가 못 밟은 그 산을."
"진짜요?"
"응. 내가 가르친 그대로, 내려오는 것까지 완벽하게 해냈지."
수연은 그 이야기에서 뭔가 훈훈함을 느꼈다.
"그럼 헤라 님 덕분이네요, 그거."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
헤라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에는 아쉬움과 자부심이 함께 담겨 있었다.
며칠 뒤, 헤라가 다시 꿈 이야기를 했다.
"또 정상에 섰어."
"이번엔 어땠어요?"
"이번엔 좀 달랐어."
헤라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깐 생각했다.
"정상에서, 문득 궁금해지더라고. 내려가는 길이 어떨지."
"그게 왜요?"
"꿈에서는 그냥 정상에 서 있기만 했거든. 내려가는 부분은 없었어. 그런데 이번엔 그게 궁금했어. 어떻게 내려갔을지."
라면사장이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당신 이야기다."
헤라가 그를 바라봤다.
"내려간 길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정상은 없었지만."
헤라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그러네."
그녀가 낮게 웃었다.
"진짜 있었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네."
한동안 헤라는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수연이 걱정스레 물었더니,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요즘은 꿈에서 정상에 안 서."
"왜요?"
"필요 없어졌나 봐."
"허전하지 않으세요?"
"허전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헤라는 국물을 뜨며 창밖을 바라봤다.
"내려온 길이 궁금해지니까, 정상은 자연스럽게 뒷전이 됐어. 이상하지."
수연은 그 변화를 지켜보며, 뭔가 자기 안에서도 비슷한 게 일어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정확히 뭔지는 몰랐지만, 아쉬움과 후회를 구분하는 법을, 그녀도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그날 오후, 헤라가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이거, 그 제자야."
사진 속에는 젊은 여성이 눈 덮인 정상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배경에는 끝없이 펼쳐진 하얀 산맥이 보였다.
"진짜 밝게 웃네요."
수연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정상 밟은 순간이었으니까."
"이 사진은 어떻게 갖고 계세요? 헤라 님은 그때 안 계셨잖아요."
"제자가 나중에 나한테 보내줬어. 자기 스승님이라고, 그 사람 아니었으면 여기 못 왔을 거라고."
헤라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야. 이 산에 대한."
수연은 그 사진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헤라는 정상을 밟지 못했지만, 그녀가 가르친 것은 결국 그 정상에 닿았다. 완성이라는 게, 꼭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었다.
그날 밤, 라면사장에게 물었다.
"헤라 님, 이제 괜찮아진 거야?"
"모른다."
"몰라?"
"그런 건 답이 없다. 오늘은 괜찮고, 내일은 또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럼 뭐가 달라진 거야?"
"아쉬움을 견디는 법이 늘었다."
라면사장이 그릇을 정리하며 말했다.
"완성 안 된 걸 완성 안 된 채로 두는 법. 그게 어려운 거다."
수연은 그 말을 곱씹었다. 완성되지 않은 것을 완성되지 않은 채로 두는 법. 그것은 그녀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창밖에서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정상에 서지 못한 등반가와, 세계를 부수고 온 마녀가, 같은 도시에서 같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내려온 길도, 부순 자리도, 그 자체로 완성된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도 괜찮은 것들이, 세상에는 분명히 있다는 것을.
며칠 뒤, 헤라가 낯선 것을 하나 들고 왔다.
지팡이였다. 정교하게 깎인 나무 지팡이에, 산의 능선을 본뜬 듯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예요?"
소예가 물었다.
"만들어봤어. 요즘 손이 심심해서."
"직접 만드신 거예요?"
"응. 예전엔 등산 장비를 직접 손질했거든. 그 버릇이 남았나 봐."
헤라는 지팡이를 카운터에 기대어 세웠다.
"이건 팔 거예요?"
수연이 물었다.
"아니. 그냥 만들었어."
"근데 왜 여기 가져오셨어요?"
헤라는 그 질문에 잠깐 웃었다.
"여기 놔두고 싶어서. 이 가게에."
라면사장이 그 지팡이를 살펴보며 물었다.
"왜 여기다."
"내가 없을 때도, 이 가게 어딘가에 산이 하나 남아 있었으면 해서."
가게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라면사장은 그 지팡이를 받아 카운터 한쪽 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조심스럽게 세워두었다.
"여기 두겠다."
"고마워."
헤라는 그 자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날 오후, 나침반을 든 아이가 그 지팡이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7화에서 문 앞을 서성이다 들어왔던, 이제는 제법 이 가게에 익숙해진 아이였다.
"이거 뭐예요?"
"산이다."
헤라가 대답했다.
"산이요? 이게요?"
"산을 오르던 사람의 마음이 담긴 거야. 그럼 산이라고 해도 되지."
아이는 그 설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팡이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저도 산에 가본 적 있어요."
"진짜?"
"네. 근데 무서웠어요. 높은 데 가면 떨어질 것 같아서."
헤라는 그 말에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무서운 게 당연해. 산은 원래 무서운 곳이야."
"근데 왜 올라가요?"
"무서운 걸 알면서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그게 이상한 게 아니야."
아이는 그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나중에 무서운 데 가볼래요."
"천천히 가. 서두르지 말고."
헤라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는, 오래전 자기 제자에게 해줬을 법한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수연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라면사장에게 물었다.
"헤라 님, 저 지팡이 왜 여기다 두고 갔을까?"
"자리를 만든 거다."
"무슨 자리?"
"자기가 못다 한 것도, 여기서는 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다."
수연은 그 말을 곱씹었다. 이 가게의 붉은 그릇도, 낮은 의자도, 이제는 헤라의 지팡이도. 저마다의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여기서는 버려지지 않고 자리를 얻고 있었다.
"나도 나중에 뭔가 두고 갈 수 있을까?"
그녀가 문득 물었다.
"이미 뒀다."
"내가? 뭘?"
라면사장이 조리대 왼쪽 끝, 그녀의 자리를 가리켰다.
"저거."
수연은 그 말에 웃음이 났다.
"그건 그냥 내가 쓰는 자리잖아."
"자리를 쓰는 것도, 뭔가를 두고 가는 거다."
수연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저녁이 되어 헤라가 돌아갈 채비를 하며 지팡이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잘 부탁해요, 이거."
"알아서 관리한다."
"가끔 먼지도 좀 털어주고."
"그건 안 한다."
"해줘요."
"생각해보지."
헤라는 그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은 여느 때처럼 꼿꼿했다. 정상을 밟지 못한 사람의 걸음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내려옴을 완성해낸 사람의 걸음이었다.
가게 안, 카운터 구석의 지팡이는 그날부터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켰다. 아무도 그것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완성되지 못한 산 하나가, 이렇게 라면가게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얻었다.
밤이 깊어 손님이 끊긴 뒤, 비아가 그 지팡이 앞에 쪼그려 앉아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 하냐."
라면사장이 물었다.
"산 구경한다……이다."
"그게 산으로 보여?"
"헤라가 산이라고 했다……이다. 그럼 산이다……이다."
비아는 지팡이의 능선 무늬를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나도 문 만들 때, 이런 무늬 넣어볼까……이다?"
"무슨 무늬?"
"내가 지나온 길들……이다. 다 다르게 생겼다……이다."
라면사장은 그 말에 잠깐 손을 멈췄다.
"넣고 싶으면 넣어."
"근데 문은 매번 사라진다……이다. 무늬 넣어도 소용없다……이다."
"사라지는 거랑 없었던 건 다르다."
비아는 그 말을 한참 곱씹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헤라도 그런 말 했다……이다. 아쉬운 거랑 후회하는 거 다르다고……이다."
"들었어?"
"다 들었다……이다. 나는 문이니까, 다 듣는다……이다."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비아는 지팡이 앞에 조금 더 앉아 있다가, 하품을 하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가게의 불이 하나씩 꺼졌다. 마지막 불빛 아래, 카운터 구석의 지팡이만이 희미하게 그 윤곽을 남기고 있었다. 완성되지 못한 등정의 흔적이, 완성된 하루의 끝자락에 조용히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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