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25화. 마취 진단
녹사가 가게를 찾은 건, 사흘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었다.
그녀는 카운터에 앉아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형사가 물을 한 잔 내려놓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상하다."
"뭐가 이상하십니까."
"경고할 일이 없다."
그녀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손등의 작은 흉터들 — 사람들 대신 아파온 세월의 흔적이었다.
"내 일은, 사람이 위험한 한계에 다가가기 전에 경고하는 거다. 그런데 요즘, 아무도 한계까지 가지 않는다. 무모한 도전도, 위험한 사랑도, 무리한 싸움도 — 전부 없다."
"그게 나쁜 겁니까? 다들 안전해지신 거 아닙니까."
녹사는 고개를 저었다.
"통증이 없는 게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통증이 필요한 선택 자체가 지워진 거다."
형사는 그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으며, 그 의미를 곱씹었다.
"이건 평화가 아니다."
녹사가 말했다.
"마취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팔뚝 안쪽을 드러냈다. 오래된 흉터 하나가 있었다. 손등의 잔흉터들과 달리 길고 깊은, 세월에 하얗게 바랜 자국이었다. "이건 아주 옛날에, 어느 광부 대신 받은 통증이다. 갱도가 무너졌을 때, 그 사람이 혼자 견딜 수 없는 만큼을 내가 나눠 새겼지." 그녀는 엄지를 그 흉터 위에 올렸다. "여길 누르면 늘 왔다. 그 사람의 아픔의 잔향이. 낮은 종소리처럼, 멀리서지만 정확하게 도착했다. 나한테는 그게 — 내가 제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확인이기도 했다."
그녀는 엄지에 천천히 힘을 줬다. 흉터가 눌려 하얗게 변했다가, 붉게 돌아왔다.
"지금은 안 온다."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녹사는 엄지를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치유된 게 아니다. 치유라면 내가 모를 리 없다. 통증이 다 살아지고 제자리를 찾으면 흉터는 조용해진다 — 그게 평화다. 도착이 끝난 상태. 근데 이건 다르다. 종은 지금도 울리고 있는데, 소리가 오다가 중간에서 사라진다. 겉에서 보면 평화랑 똑같이 조용하지. 근데 하나는 도착이고, 하나는 실종이다."
형사는 펜을 쥔 채 그 시연을 지켜봤다. 통증의 수호신이 자기 흉터를 눌러가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광경은, 오늘까지 그가 수첩에 적어온 어떤 증언보다 무거웠다. 마취는 이제 사람들을 지나, 통증 그 자체를 관장하는 존재의 안쪽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손목을 오래 들여다봤다.
"나는 요즘, 내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아플 일이 없는 세상에서, 통증의 수호신은 뭘 지켜야 하나."
그녀의 말에는 그 어떤 전투에서도 보이지 않던 불안이 서려 있었다. 형사는 그 불안을 마주하며, 이 사건이 단순히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이 도시를 지탱하는 신적 존재들의 존재 이유마저 흔들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비아가 카운터 위에서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낮게 끼어들었다.
"녹사."
녹사가 그녀를 봤다.
"너, 존재 이유 없어진 거 아니다……이다."
"…무슨 뜻이냐."
"경고할 일이 없어진 게 아니라, 경고해도 아무도 안 듣게 만들어진 거다……이다. 그 사람이 사람들 귀를 막은 거지, 네가 할 일이 없어진 게 아니다……이다."
녹사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더 크게 소리치는 거다……이다."
비아가 담담하게 답했다. 그러나 그 담담함 속에는, 자신도 한때 존재 이유를 통째로 빼앗겼던 자만이 건넬 수 있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녹사는 그 말에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네가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존재가 됐구나."
"인간성 배운 지 좀 됐다……이다."
세레나는 그날 오후, 직접 실험에 나섰다.
그녀는 시장에서 만난 낯익은 주민 — 언제나 안전한 길로만 다니던 중년의 상인 — 에게 조심스레 제안을 건넸다.
"다리 너머 마을에 구호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가보시겠어요?"
상인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위험한데 왜 가요?"
세레나는 그 질문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다음에 들려온 말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위험이, 뭐였죠?"
상인이 진지하게 되물었다. 조롱도, 무지도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그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레나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위험이라는 게 뭔지 모르시겠어요?"
"알죠. 위험한 거, 나쁜 거잖아요. 근데 지금 다들 안전한데, 굳이 위험을 자처할 이유가 있나요?"
상인은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얼굴이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 자체가, 그의 사고 체계에서 완전히 낯선 개념이 되어 있었다.
세레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그녀는 등줄기의 서늘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그 뒤로 몇 사람을 더 시험해봤다.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오래 살아온 노인들 중 몇몇은 아직 위험의 개념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 그들의 삶에 이미 살아진 위험의 순간들이 너무 많이 새겨져 있어서였다. 그러나 최근 몇 달 사이 특별한 굴곡 없이 평온하게 지내온 젊은 사람들일수록, 그 개념이 더 흐릿했다.
한 청년은 이렇게 답했다.
"위험이요? 아, 그거 옛날 얘기 아니에요? 요즘 세상에 위험할 일이 뭐가 있어요."
세레나는 그 대답에서, 이 마취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번지되 — 최근에 태어났거나 최근에 도착한, 아직 삶의 굴곡이 얕은 이들에게 더 빠르게 침투한다는 패턴을 읽어냈다. 오래 산 사람들의 몸에는, 이미 위험을 겪어낸 흔적이 너무 깊이 새겨져 있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작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희망은, 지금 이 순간 세레나에게 필요한 전부이기도 했다.
그녀는 가게로 돌아와, 그 대화를 형사에게 전했다.
"이건 개별 사건이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위험을 감수한다는 개념 자체가, 사람들의 사고 체계에서 서서히 지워지고 있어요. 처음엔 위험한 행동을 안 하는 것뿐이었는데, 이제는 위험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형사는 그 말을 들으며 자기 수첩을 펼쳤다. 페이지가 이미 절반 넘게 채워져 있었다.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처음엔 몇 가지 사건이 사라지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어요."
뮤나 페브의 라디오는 그날 저녁, 평소와 다른 방송을 내보냈다.
"오늘도 사연이 많이 왔는데요, 다들 비슷한 내용이에요.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는 사연이 절반이 넘어요."
그녀가 마이크 앞에서 말했다. 목소리에 피로가 짙게 배어 있었다.
"제가 한번 여쭤볼게요. 혹시, 왜 우는지 아시는 분 계시면 사연 주세요. 상품 걸겠습니다."
그녀는 잠시 기다렸다. 방송국 창밖으로, 저녁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침묵을 방송으로 그대로 내보냈다. 몇 초의 정적. 그리고 그녀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아무도 없으시네요. 오늘은, 그냥 음악으로 넘어갈게요."
가게에서 그 방송을 듣던 형사는, 손님이 다 빠져나간 카운터에 홀로 앉아 그 침묵의 무게를 곱씹었다.
이유 없이 우는 사람들. 그들은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도, 왜 우는지도 모른 채로 울고 있었다. 그것은 슬픔의 가장 순수한 형태이자, 가장 잔인한 형태였다. 이유조차 허락받지 못한 눈물.
위나 홀이 가게에 온 것은, 그 무렵 형사와 마주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카운터에 앉아, 오랫동안 국물을 앞에 두고도 손을 대지 않았다.
"요즘 잘 지내십니까?"
형사가 물었다.
위나는 고개를 저었다.
"악몽을 못 꿔요."
"그게, 안 좋은 겁니까?"
"저는 원래 악몽을 꾸는 사람이었어요. 살아남은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근데 그 악몽이라도 꿔야, 아침에 살아난 기분이 들었어요. 오늘 눈을 뜨니, 어제와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는 감각이요."
그녀는 잠시 말을 골랐다. 악몽 이전에는, 아예 잠들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살아남은 직후의 몇 해 — 눈을 감는 것 자체가 무서워서 등불을 켜둔 채 밤새 천장을 보며, 가로등지기 노인의 발소리를 세던 시절. 같은 시각에 같은 보폭으로 창밑을 지나가는 그 발소리가, 그녀에게는 세상이 아직 돌아가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러다 처음으로 악몽을 꾼 날, 저는 울었어요. 무서워서가 아니라 — 드디어 잠들 수 있게 됐구나 싶어서요. 저한테 악몽은 병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었어요."
그 뒤로 그녀는 머리맡에 공책을 두고 살았다. 새벽에 깨면 곱은 손가락으로, 방금 꾼 꿈을 몇 줄이라도 적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그 공책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형사가 조심스레 넘겨보니, 빽빽하던 글씨는 몇 주 전 날짜에서 뚝 끊겨 있었다. 그 뒤로는 전부 빈 페이지였다.
"이게 제 밤의 출석부였어요." 위나가 빈 페이지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요즘 제 밤은 결석이 아니에요. 아예 명단에서 지워진 것 같아요."
그녀는 자기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근데 요즘은, 자고 일어나도 그냥 — 아무 데도 안 갔다 온 기분이에요. 밤이 그냥, 없었던 것 같아요."
형사는 그 말을 조용히 받아 적었다.
"…악몽조차 삶의 증거였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아요."
위나가 낮게 답했다.
"나쁜 꿈이라도, 그게 제가 뭔가를 겪었다는 증거였거든요. 지금은 그 증거마저 없어요."
형사는 수첩을 덮었다. 그는 자기 몫의 밤들을 떠올렸다 — 예전의 사건, 예전의 상실, 그 모든 것들이 지금도 여전히 그의 안에서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안도감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그 안도감 자체가 언젠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명확히 느꼈다.
그날 밤, 그는 수첩의 새 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삭제가 아니다. 마취다. 그리고 마취는, 아픈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서서히 번진다."
그는 그 문장 밑에, 자기 이름 대신 낡은 메모의 문구를 떠올리며 마지막 줄을 더했다.
"부탁받은 게 있다. 이 도시가 마취되기 전에, 지켜야 한다."
파빌라는 그날 밤, 위나 홀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었다. 손님들이 다 빠져나간 뒤에도 카운터 한구석에 앉아, 어른들의 대화를 놓치지 않고 챙겨 듣는 게 그녀의 오랜 버릇이었다.
"악몽을 못 꾼다는 거."
그녀가 불쑥 말을 얹었다.
위나가 그녀를 봤다.
"저는 그거, 무슨 느낌인지 알아요."
"…네가?"
"저는 원래 계속 죽었다 살아났잖아요. 그 반복 안에서 제일 무서웠던 게 뭔 줄 아세요? 반복이 아니라, 반복을 반복이라고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거였어요. 처음엔 매번 다르게 아팠거든요. 근데 나중엔 그 아픔에 무뎌지려고 했어요. 그게 더 무서웠어요."
파빌라는 자기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아저씨가 절 구해준 건, 제가 아직 아파할 줄 아는 상태였을 때였어요. 만약 제가 완전히 무뎌진 다음이었으면, 아마 구해져도 몰랐을 거예요."
형사는 그 말을 들으며 수첩을 다시 펼쳤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통찰이, 그가 오늘 하루 종일 정리한 어떤 분석보다 정확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마취의 진짜 위험은."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사람들이 아픔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아픔을 못 느끼게 된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되는 거군요."
파빌라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네. 저처럼 처음부터 계속 아팠던 애들은 오히려 눈치채기 쉬워요. 근데 원래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은, 자기가 뭘 잃었는지도 모른 채 그냥 편해질 거예요."
수연은 그 밤 늦게, 가게 뒷골목에서 홀로 검을 손질하고 있었다. 숫돌 위로 날을 미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골목에 깔렸고, 입김은 등불 빛 속에서 하얗게 부풀었다가 사라졌다. 손끝이 시릴 때까지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가, 그녀는 문득 자기 자신을 시험해봤다.
그녀는 눈을 감고, 일부러 가장 아픈 기억을 떠올려봤다. Writer가 자신을 "지나간 사실"로 남의 일처럼 말하던 그 순간을.
가슴이 아렸다.
여전히, 정확하게 아렸다.
그녀는 그 통증을 확인하고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그녀가 혼잣말을 했다.
"나는 아직 안 무뎌졌어."
그녀는 검을 마저 밀었다. 쇳가루 섞인 물이 숫돌 가장자리로 검게 번졌다.
"…근데 웃기지 않냐. 아픈 걸 다행이라고 하고 있어." 그녀는 아무도 없는 골목에 대고 내뱉었다. "그 짜증나는 새끼 덕분에, 별걸 다 다행으로 치면서 살게 됐네."
그러나 그녀는 곧, 더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오늘 이렇게 확인했다고, 내일도 같은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 마취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았다. 조금씩, 알아채지 못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러니까 서둘러야 돼."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같은 시각, 마고 센느는 자기 집 창가에 앉아 뜨개질을 하다가 손을 멈췄다.
그녀는 매일 밤 같은 자리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게 오랜 습관이었다. 이유를 물으면 늘 대충 웃어넘겼다 — "그냥 손이 심심해서요"라고.
그런데 오늘 밤, 그녀는 문득 그 습관이 시작된 이유를 떠올리려 했다.
기억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뭔가 있었다는 감각은 남아 있는데 — 그 내용이 텅 비어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 누군가의 얼굴도,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뜨개바늘을 내려놓고,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이상하네."
그녀가 중얼거렸다.
"분명 누군가를 위해서 시작한 건데."
그 밤, 그녀는 처음으로 뜨개질을 하지 않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녀는 그 사실조차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작은 상실은, 도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형사의 수첩에도, 세레나의 보고에도 남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 작고, 너무 조용해서 —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냥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마취의 진짜 무서운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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