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화. 문을 부수고 들어온 사람
노바 니발리스에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도시가 비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있었고, 군밤을 굽는 할머니가 있었고, 새벽마다 눈길을 여는 제설차가 다녔다. 세레나가 이 도시를 처음 상상했을 때, 그녀가 그린 것은 빈 거리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거리였다. 그래서 도시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과 함께 태어났다.
그들은 이 도시에 온 것이 아니라, 이 도시였다.
문을 열고, 눈길을 걸어, 자기 이야기를 끝낸 뒤 이곳에 걸어 들어오는 사람 — 도착하는 사람은, 아직 단 한 명도 없었다.
라면가게는 그 도착하는 사람을 위해 지어진 가게였다. 주민들에게는 저마다의 식탁이 있었고, 저마다의 단골집이 있었다. 이 가게만은 달랐다. 이 가게의 의자들은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의 것이었고, 주민들도 어쩐지 그것을 알아서, 문 앞을 지나며 안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라면사장은 그래도 매일 물을 올렸다. 언제 올지 모를 첫 손님을 위해 끓이는 물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날은 비아가 문을 열지 않았는데 문이 열렸다.
정확히는, 문이 열린 게 아니라 뜯겨 나갔다.
굉음과 함께 가게 벽 한쪽이 얼음 파편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눈보라가 밀려들었고, 그 한가운데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흰 후드에 축 늘어진 토끼 귀가 달려 있었고, 은백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손에는 반쯤 얼어붙은 투명한 검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방금 무언가와 격렬하게 싸우고 나온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게 안은 순식간에 얼음 조각과 눈으로 뒤덮였다.
비아가 카운터 위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광경을 구경했다. 그러다 문득 여자의 후드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여기."
여자가 검을 늘어뜨린 채 가게 안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목소리 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떨림이었다.
라면사장은 무너진 벽을 잠깐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냄비 뚜껑을 닫았다.
"손님."
"뭐?"
"벽값은 나중에 청구한다."
여자는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지금 그게 중요해? 방금 세계 하나가 통째로 무너지는 거 봤는데."
"여긴 안 무너졌다."
"……"
여자는 잠깐 말을 잃었다. 그녀는 검을 겨눈 채로 한 발 다가섰다. 손잡이를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여기 어디야."
"라면가게."
"그게 아니라. 무슨 세계냐고."
"노바 니발리스."
여자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는 얼굴이었다. 경계심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함정이면 바로 벨 거야."
"함정 아니다."
"어떻게 믿어."
"안 믿어도 상관없다."
라면사장은 국자를 들고 냄비 속을 확인했다. 그 태연함이 오히려 여자를 더 자극한 모양이었다.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아니. 그냥 밥 준비하는 거다."
여자는 검을 다시 치켜들었다. 검끝에서 서리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자세는 아까보다 힘이 없었다. 마치 검을 놓으면 자기 자신도 함께 무너질까 봐 겨우 붙잡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난 방금 세계를 파괴했어. 내가 살던 세계를, 내 손으로. 그랬더니 문이 열렸고, 나오니까 여기야."
"응."
"안 놀라?"
"놀랄 힘을 아껴야 한다."
여자는 그 대답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이제까지 만난 존재들 중 자신의 위협 앞에서 이렇게 무심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너, 정체가 뭐야."
"라면사장."
"그 대답 말고."
"그게 정체다."
비아가 카운터에서 폴짝 뛰어내려 여자에게 다가갔다. 검을 든 낯선 침입자 앞에서도 전혀 겁먹지 않은 걸음이었다.
"손님, 검 좀 치워라……이다. 국물 튄다."
여자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비아를 바라봤다.
"……넌 또 뭔데."
"비아다……이다."
"토끼야?"
"문이다……이다."
"문?"
"방금 네가 부순 거 말고, 진짜 문이다……이다."
여자는 그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검을 쥔 손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비아의 태도에 위협이라곤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아는 여자의 후드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축 늘어진 토끼 귀, 목덜미의 매듭까지.
"……그거."
비아가 낮게 말했다.
"어디서 났냐."
"이거? 원래 있었어. 마지막 결전 때 받은 장비야. 왜."
비아는 대답하지 않고 한참 그 후드를 바라보았다. 낯선 것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을 다시 보는 눈에 가까웠다.
"……낯이 익다."
"뭐가 낯이 익어. 처음 보면서."
"모른다. 그냥 그렇다……이다."
비아는 더 캐묻지 않고 다시 폴짝 물러났다. 그러나 여자의 후드를 흘끔거리는 눈길은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라면사장은 아무 말 없이 조리대로 돌아섰다.
카운터 뒤 선반에는 라면 봉지들이 종류별로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끓여서 만드는 요리 같은 건 애초에 없는 가게였다. 면은 봉지에서 나왔고, 수프도 봉지에서 나왔다. 이 가게에서 라면사장이 직접 만드는 것은 딱 두 가지 — 그 위에 올라가는 것과, 그 옆에 놓이는 것뿐이었다.
그는 선반에서 파란 포장의 비빔면 봉지를 하나 꺼냈다. 면을 삶고, 찬물에 헹구고, 봉지 속 양념을 짜서 비볐다. 오이를 채 썰어 얹고, 삶은 계란을 반으로 갈라 올렸다.
그리고 그 옆 화구에서는, 어느새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었다.
기름이 튀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가게 안을 채웠다. 라면사장은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을 먹기 좋게 잘라 작은 접시에 담고, 비빔면 그릇 옆에 나란히 내려놓았다.
여자의 눈이 그릇에 닿는 순간, 멈췄다.
"……비빔면."
그녀는 그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봉지째 끓여 찬물에 헹구는 인스턴트 면, 봉지에서 짜낸 붉은 양념, 오이채와 반 갈라 얹은 삶은 계란까지. 검과 마법과 신이 있던 세계에 오기 전 — 훨씬 전, 그녀가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라에서, 여름마다 먹던 바로 그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 옆의 접시.
"……삼겹살."
비빔면에 삼겹살. 그 조합을 아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여름을 나본 사람뿐이었다.
"……너, 이걸 어떻게."
"뭘."
"이 조합을 어떻게 아냐고."
"원래 이렇게 먹는 거다."
라면사장은 그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녀가 도착했을 때부터,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뜨거운 국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여자는 미심쩍은 얼굴로 검을 마저 거두지 못한 채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젓가락을 드는 손이, 자기도 모르게 익숙한 각도로 움직였다. 몇 년을 건너뛴 손이 아니라, 어제도 이걸 먹은 사람의 손이었다.
카운터 한쪽에는 콜라 캔이 놓여 있었다. 손님이 오면 내주려고 라면사장이 늘 채워두는 것이었다. 여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저거, 마셔도 돼?"
"마셔도 된다."
여자는 캔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마시지 않았다. 대신 아무 예고도 없이, 자기 그릇 안에 통째로 쏟아부었다.
검은 탄산이 붉은 양념 위로 거품을 내며 퍼졌다.
가게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비빔면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비빔면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알면서 부었다. 그래서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라면사장은 그 광경을 보고도 말리지 않았다. 손을 뻗지도,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그녀가 하는 대로 두었다.
비아는 카운터 끝에 매달려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검은 거품이 붉은 양념 위로 퍼지는 것을. 여자의 손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것을.
"……안 된다."
비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 된다, 안 된다……이다……!"
그리고 비아의 회보랏빛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무서워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경악의 눈물이었다. 비아는 라면에 진심인 존재였다. 문이니 세계니 하는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지만, 비빔면에 콜라를 붓는 것은 — 그것만은 — 이 세상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흉악한 짓이었다.
"비빔면한테… 무슨 짓을……이다……."
비아가 훌쩍이며 그릇을 향해 손을 뻗었다. 구하려는 것이다. 이미 늦었는데도.
라면사장이 그 작은 손을 조용히 붙잡았다.
"놔둬라."
"근데……! 근데 저건……이다……!"
"저 손님의 선택이다."
"선택에도 하면 안 되는 게 있다……이다……!"
비아는 진심으로 울면서 항의했지만, 라면사장은 놓아주지 않았다. 여자는 그 소란을 곁눈질로 보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거… 맛있냐……이다……?"
비아가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마지막 희망을 걸듯 물었다. 맛있다고 하면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몰라. 지금 확인할 거야."
여자는 젓가락을 들어 그것을 마구 비볐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아무도 권하지 않았다. 온전히 그녀 혼자 정한 조합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한입 크게 떠먹었다.
"……더럽게."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맛없어."
그리고 울었다.
"으아아아앙……"
소리 내어 우는 것도, 조용히 흐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이처럼 엉엉 울음이 터졌다. 그녀 자신도 놀란 얼굴이었다. 마치 자기 몸이 자기보다 먼저 반응해버린 것처럼.
젓가락을 쥔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울면서 계속 먹었다. 콜라가 튀는 것도, 양념이 입가에 묻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중간중간 삼겹살을 면에 얹어 같이 먹었다. 그 부분만은 정확하게, 몸에 밴 순서대로였다. 망쳐놓은 면과 완벽한 고기를 번갈아 먹으며, 그녀는 계속 울었다.
비아는 그 옆에서 눈을 깜빡이다가, 젓가락으로 한 입 건져 먹어보았다.
"……이건 진짜 이상하다……이다."
"그치! 진짜 이상해!"
여자가 울면서 소리쳤다.
"근데 왜 자꾸 먹냐."
"내가 만들었으니까!"
그녀는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그릇을 끌어안듯 먹었다.
"아무도 나한테 이거 만들라고 안 했어. 아무도 이거 먹으라고 안 했어. 내가 골랐어! 맛없는 것도 내가 골랐다고!"
라면사장은 그 말을 들으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조용히 마른 수건 한 장을 그녀 손이 닿는 곳에 밀어두었을 뿐이었다. 왜 우느냐고도, 그만 먹으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그녀를 울게 내버려 두었다.
여자는 그릇을 거의 다 비울 때까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콜라와 양념이 뒤섞인,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맛일 그 음식을, 그녀는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마지막 한 입을 삼킨 뒤, 그녀는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닦았다.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뭘."
라면사장이 물었다.
"방금 운 거."
"안 봤다."
"뻔히 봤잖아."
"안 본 걸로 하는 거다."
여자는 그 말에 코를 훌쩍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것도 되는 거야, 여기서는."
"여긴 그런 것만 된다."
그녀는 소매로 한 번 더 눈가를 훔치고, 검을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손에서 완전히 놓은 것이었다.
비아가 빈 그릇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또 만들 거냐……이다?"
"몰라. 근데."
여자는 잠깐 생각하다가, 낮게 덧붙였다.
"또 만들 것 같아."
그 말은,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여자의 이름은 수연이었다.
그릇이 거의 비워질 무렵, 그녀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여기, 뭐 하는 곳이야."
"라면 파는 곳."
"그거 말고. 여기 세계 말이야."
라면사장은 무너진 벽을 흘끔 보고는 대답했다.
"이야기 끝난 사람들이 오는 곳."
"난 안 끝났어."
목소리에 아까만큼의 날은 서 있지 않았다.
"끝났으니까 왔겠지."
"내 이야기는 아직 안 끝났어. 나는 그냥 거기서 빠져나온 거야."
"빠져나온 것도 끝이다."
수연은 그 말에 반박하려다, 이번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부수기 전에, 알게 된 게 있어."
그녀는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라면사장도 캐묻지 않았다.
"그거면 끝난 거다."
"내가 정한 거지, 누가 정해준 게 아니라고."
"누가 정했든, 어떻게 끝났든, 끝난 건 끝난 거다."
수연은 그 말에 뭐라 쏘아붙이려다가, 방금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화를 낼 기운도 이미 다 써버린 참이었다.
"……넌 뭐가 그렇게 태평해."
"태평한 게 아니다. 그냥 안 놀랄 뿐이다."
"이런 애가 자주 벽 부수고 들어와?"
"네가 처음이다."
수연은 그 대답에 옅게 웃었다. 아까와는 다른, 힘이 조금 빠진 웃음이었다.
"이상한 놈이네."
"자주 듣게 될 거다."
수연의 손이 잠깐 멈췄다.
"……어디로 돌아갈지도 모르겠어."
"돌아갈 곳은."
"없어. 문이 하나만 열렸거든. 여기로."
가게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라면사장이 새 그릇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이번엔 뜨거운 봉지라면이었다. 국물 위에 파가 송송 얹혀 있고, 계란이 반숙으로 익어 있었다. 면과 수프는 봉지에서 나왔지만, 그 위에 올라간 것들은 전부 이 가게의 것이었다. 시키지도 않은 두 번째 그릇이었다.
"뭐야, 이건."
"더 먹어."
"안 시켰는데."
"서비스다."
"공짜로 왜 줘."
"내키니까."
수연은 그 그릇을 한참 노려보다가, 결국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
"……갚을 거야, 이거."
"안 갚아도 된다."
"싫어. 난 빚지고는 못 살아."
"그럼 갚든가."
"어떻게 갚는데?"
라면사장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벽 고쳐."
수연은 순간 멈칫하더니, 무너진 벽 쪽을 돌아봤다. 눈보라가 여전히 그 틈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내가 저걸?"
"네가 부쉈다."
"그건 그렇지만."
"그럼 고쳐."
수연은 한참 그 벽을 바라보다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만이야."
"오늘부터다, 라고는 안 했다."
수연은 그 말이 묘하게 거슬렸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비아가 그런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냐."
"……수연."
"수연, 수연."
비아는 그 이름을 두어 번 되뇌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이름 세다……이다."
"뭐?"
"세다고. 이름이."
수연은 그 뜬금없는 평가에 헛웃음을 흘렸다.
"……넌 진짜 이상한 애구나."
"자주 듣는다……이다."
식사가 끝난 뒤, 수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너진 벽 쪽으로 걸어갔다.
"진짜 고쳐야 되는 거야, 이거?"
"네가 부쉈다."
"알았다고."
그녀는 벽 앞에 서서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푸른 서리가 피어올랐다. 부서진 잔해들이 서서히 얼어붙으며 다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최소한 눈보라가 들이치는 건 막을 정도는 되었다.
"……이 정도면 됐지?"
"됐다."
"칭찬이라도 좀 해."
"고쳤네."
"그게 칭찬이야?"
"그럼 뭘 더 바라나."
수연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아까와 달리 옅은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 앉았다. 딱히 갈 곳이 없어서였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오늘 하루만 있을 거야."
"그래."
"내일은 나갈 거야."
"나가고 싶으면."
"어디로 나갈지는 아직 안 정했지만."
"천천히 정해도 된다."
수연은 그 말에 뭐라 쏘아붙이려다가, 이상하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비아가 옆에서 흥얼거리듯 말했다.
"수연도 알바한다……이다?"
"안 해."
"방금 벽 고쳤잖아."
"그건 그냥 빚 갚은 거야."
"빚 갚은 건 일한 거랑 같다……이다."
"달라."
"어떻게 다른데."
수연은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여긴 뭐 하고 지내는 데야?"
"그냥 산다."
라면사장이 짧게 답했다.
"싸울 일은?"
"거의 없다."
"목표는?"
"딱히."
수연은 그 대답들에 하나같이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럼 지루하지 않아?"
"지루한 것도 나쁘지 않다."
"난 못 견뎌, 그런 거."
"지금은 견디고 있잖아."
수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그녀는 지금, 벽이 반쯤 고쳐진 낯선 가게 카운터에 앉아, 갈 곳도 정하지 못한 채 라면 국물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것도 그럭저럭 견디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수연은 떠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떠날 곳을 찾지 못한 것에 가까웠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라면사장은 카운터 구석에 담요 한 장을 슬쩍 밀어두었다.
"뭐야, 이건."
"추우면 덮어."
"필요 없어."
"그래."
그는 더 권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계속했다. 수연은 그 담요를 한참 노려보다가, 결국 슬그머니 끌어다 무릎에 덮었다.
"……이건 그냥, 발이 시려워서야."
"그래."
"딴 뜻 없어."
"안다."
수연은 그 무심한 대답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걸,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었다.
그녀는 문득 텅 빈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콜라와 양념이 뒤섞였던 그 첫 그릇의 맛이 아직 입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맛없었다. 정말 맛없었다. 그런데 다시 만들고 싶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왜 그런 걸 만들었냐고 묻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가게 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무너졌다 다시 얼어붙은 벽 틈으로 그 눈이 가게 안까지 조금씩 흩날려 들어왔다. 수연은 그 눈을 잠깐 바라보다가, 담요를 조금 더 끌어당겼다.
라면사장은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다시 냄비 앞으로 돌아갔다.
노바 니발리스에, 처음으로 창작자가 아닌 사람이 도착한 날이었다.
========================================